막바지 피서철이다. 피서객이 몰리는 해수욕장마다 안전 관리에 힘을 쏟지만 수심 깊은 줄 모르고 위험 구역까지 헤엄쳐 들어가는 수영객이 있게 마련이다. 수면에 안전선을 띄워 물놀이 구역을 구분해두는 이유다. 그래야 본인도 “더 이상 들어가면 바닥에 발이 안 닿아 위험하겠구나”라고 알고, 지켜보던 사람들도 소리쳐 경고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재정 사정이 꼭 그렇다. 때로는 헤엄치고 때로는 파도에 떠밀리다 보니 어느새 깊은 곳까지 왔다. 2017년 660조 원이던 국가 채무는 5년 만에 400조 원이 불어 2022년 1060조 원이 됐다. 이자도 덩달아 늘어 2017년 19조 원에서 올해는 30조 원 수준이다. 더럭 겁이 나 발을 디뎌보니 위험한 지점까지 와 있는 형국이다.
이에 정부는 2023년과 2024년 국가 예산을 마련하면서 역대 최대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강력한 재정 정상화를 추진해왔다. 그 결과 2025년 6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됐던 국가 채무 비율을 50%대 초반으로 억제할 수 있었다. 일각에서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양호한 편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얼핏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올 4월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재정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말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D2) 비율은 50%대로 전체 37개 선진국의 평균치(73.9%)와 견줘 확실히 낮다. 하지만 비교 대상을 비기축통화 선진국으로 좁혀보면 달라진다. 우리나라는 이미 비기축통화 선진국 평균에 이르렀다. 더구나 IMF는 코로나19 이후 부채비율이 축소되고 있는 주요 선진국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얼마나 빨리 늘어날까. 지난해 태어난 아이들이 우리 경제를 떠받칠 2060년의 일반정부 부채 비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50%대, 국회예산정책처는 160%대로 전망하고 있다. 비탈길에 놓인 눈 뭉치처럼 금세 커진다는 것이다. 미래 세대의 시각에서 보면 본인이 살 만하지도, 아이를 낳을 만하지도 않은 나라가 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가 재정을 운용하는 데 있어 ‘안전선’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재정준칙이 그것이다. 국가재정법을 고쳐 예산편성 시 재정 적자를 GDP의 3% 이내로 제한하고 국가 채무가 GDP의 60%를 초과할 경우 재정 적자 한도를 GDP의 2%로 축소해 국가 채무 증가 속도를 억제하자는 취지다. 정부가 재정 운용을 하는 과정에서 재정 건전성 유지를 위해 스스로 손발을 묶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추진하는 것은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2022년부터 국가재정법 개정을 통해 재정준칙 도입을 위해 노력했다. 여야 간 이견을 좁힌 수정안까지 마련했다가 21대 국회 임기가 올 5월 종료되면서 아쉽게도 자동 폐기됐다. 새로 시작된 22대 국회에서 정부는 다시 재정준칙 도입을 추진할 것이다.
미래 세대와 함께 가고 멀리까지 동행하려면 재정준칙 도입이 꼭 필요하다. 22대 국회와 정부가 하루빨리 머리를 맞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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