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000660)가 ‘구글카’로 불리는 웨이모 자율주행차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했다. HBM이 주요 응용처인 인공지능(AI) 서버는 물론 차세대 정보기술(IT)이 총집약된 자율주행차에도 활용되면서 SK하이닉스는 시장 확대의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됐다.
강욱성 SK하이닉스 부사장은 14일 서울 JW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제7회 인공지능반도체포럼 조찬강연회’에서 웨이모에 자율주행차용 3세대 HBM(HBM2E)을 단독 공급했다고 밝혔다. 강 부사장은 “D램을 4단으로 쌓은 HBM2E를 자동차용(오토그레이드)으로 따로 설계해서 웨이모에 납품했다”며 “차량용 HBM을 공급한 회사는 SK하이닉스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HBM은 서버에서만이 아니라 자율주행차에도 쓰이고 있다”며 “HBM은 고성능 차량용 메모리 분야에서 새로운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쌓아서 데이터가 이동하는 통로를 극대화한 칩이다. 2022년 오픈AI가 만든 ‘챗GPT’의 출현으로 AI 구현에 필요한 데이터양이 폭증하자 연산장치 바로 옆에서 대량의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는 메모리인 HBM의 판매량도 크게 늘어났다.
HBM은 AI 인프라에 특화된 메모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PC 등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IT 기기에 활용된 사례는 드물다. 칩의 사양이 너무 높은 데다 범용 D램보다 가격이 6~7배 이상 비싸기 때문이다. 특히 성능 고도화에 따라 메모리 탑재량이 갈수록 올라가는 자율주행차 분야에서도 LPDDR D램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HBM을 활용했다고 알려진 경우는 드물었다. SK하이닉스의 웨이모 공급 사례가 HBM이 서버뿐만 아니라 다양한 IT 제품에 탑재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적잖은 의미가 있는 이유다.
HBM을 활용한 자율주행 기업이 웨이모라는 점도 주목된다. 웨이모는 세계 최고의 자율주행차 기업이다. 글로벌 IT 회사 구글의 자율주행차 개발 업체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무인 로보택시를 시험 운행하는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등 세계 자율주행 업계를 주도하고 있다. 웨이모의 경쟁사들은 업계에서 리더십을 지닌 회사의 움직임을 보면서 차량용 칩에 HBM 도입하는 것을 검토할 공산이 크다.
강 부사장 역시 향후 HBM이 자동차 메모리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레벨 2.5 이상의 자율주행을 위해서는 더욱 높은 컴퓨팅 파워가 필수적”이라며 “한 칩에서 초당 1TB를 연산하는 4세대 HBM(HBM3)과 LPDDR 칩이 이러한 요구 사항을 잘 충족한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도 HBM을 앞세워 ‘맞춤형 메모리’ 시장에서 더욱 앞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SK하이닉스는 AI용 그래픽처리장치(GPU) 1위 회사인 엔비디아와의 돈독한 공조로 전체 HBM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앞으로 자율주행차에서까지 HBM이 적극적으로 채택된다면 이 사업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 SK하이닉스는 최근 차량용 반도체 솔루션 제품군에 HBM을 신규 추가했다. 차량용 반도체 안전 표준인 ‘AEC-Q100’도 획득했다. 강 부사장은 “현재 AI 시장에서 주목받는 4세대 HBM(HBM3) 또한 차량용 분야에서 채용될 수 있어 인증 등 상용화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HBM이 자율주행차 안에서 열과 압력 등에 취약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HBM도 실리콘으로 만들어졌고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HBM 역시 고객사의 요구 조건이 까다로워서 열과 압력에 잘 견딘다”며 “칩 설계와 신뢰성 확보 과정이 다른 D램보다 조금 복잡할 수는 있지만 자율주행차 적용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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