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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약 앞두고 '발동동'…가상자산거래소-은행, 뒤바뀐 갑을관계

은행 거래소 연결계좌 증가율 3년만 100%

원화예치금 이자 2%대 책정하며 파격 대우

농협은 '빗썸 라운지'에 계좌개설 창구까지

/셔터스톡




“요즘 가상자산 거래소와 은행의 갑을 관계가 확실히 뒤바뀌었습니다. 은행이 오히려 거래소 편의를 적극적으로 봐주며 눈치를 보고 있어요."

거래소들의 실명계좌 재계약 시즌이 도래하면서 거래소와 은행 사이 기류 변화가 포착되고 있다. 그간 은행과 거래소는 철저한 갑을 관계에 놓여있었다. 거래소가 가상자산 원화 거래를 지원하기 위해선 반드시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를 발급받아야만 하는 탓이다. 그러나 이달 말 사전 자료 제출이 시작되는 가상자산사업자(VASP) 갱신 신고를 앞두고 은행 실명계좌 재계약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 관계가 역전된 모습이다.

가상자산 거래소의 협상력이 높아진 데엔 은행의 가상자산 투자자·예치금 비중이 높아진 영향이 크다. 국내 5개 원화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발급한 신한은행·NH농협은행·전북은행·카카오뱅크·케이뱅크는 모두 최근 몇 년 사이 가상자산 거래소 연결계좌 이용자가 크게 늘었다.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시행으로 거래소가 원화 거래를 위해 은행을 찾아야 했던 지난 2021년과 비교하면 더욱 극적이다. 민병덕 의원실이 발표한 최근 자료에 따르면 특금법 시행 이전인 2020년 말 기준으로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발급하고 있던 신한은행과 NH농협은행, 케이뱅크는 지난해 말까지 모두 100%가 넘는 증가율을 보였다. 코빗과 제휴를 맺은 신한은행이 200%로 가장 높았고 NH농협은행(빗썸)이 132%, 케이뱅크(업비트)가 131% 수준이다.



거래소로 관계 주도권이 넘어간 모습은 최근 예치금 이용료율 책정 과정에서 특히 뚜렷하게 관측된다. 지난달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되면서 은행은 거래소 이용자의 원화 예치금에 일종의 ‘이자’ 개념의 이용료를 지급해야 한다. 이에 신한은행과 NH농협은행, 케이뱅크는 일제히 2% 초중반대의 이자 지급을 결정했다. 증권사 투자자 예탁금 이용료와 비슷한 수준인 1%대로 설정될 것이라는 당초 업계의 예측을 뒤엎은 파격 대우다. 업비트와 빗썸은 은행과의 협의를 통해 책정한 첫 번째 요율을 당일 밤부터 2배 가까이 상향 조정하는 등 은행으로부터 예치금 이용료율 책정에 상당한 자율권을 보장받은 모습도 보였다. 인터넷은행 업계 1위로서 비교적 여유로운 포지션이었던 카카오뱅크도 최근 동참했다. 카카오뱅크는 지난 19일 기존 연 1.0%였던 예치금 이용료율을 2.3%로 2배 넘게 인상했다. 코인원 관계자는 “예치금 관리기관인 카카오뱅크와 전향적으로 협의한 끝에 이용료율 인상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농협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갔다. 지난달 서울 강남에 문을 연 빗썸 라운지에 농협은행 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창구를 세운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빗썸이 최근 KB국민은행으로의 실명계좌 전환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재계약 만료를 앞두고 농협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 같다”며 “가상자산 투자자의 예치금 비중이 케이뱅크만큼 높은 것은 아니지만, 빗썸이 젊은층 유입에 큰 도움이 됐다. 빗썸 이용자가 농협 계좌 사용을 중단하고 1년 후 휴면계좌로 전환될 경우 핵심성과지표(KPI) 지표에서 그 타격이 뚜렷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농협이 빗썸 재계약 무산을 대비해 실명계좌를 원하는 코인마켓 거래소를 물색하며 ‘플랜 B’를 세우고 있다는 소문도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퍼졌다. 그러나 이에 대해 농협은행 측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지난 1분기 업비트 예치금 비중이 25%에 달할 만큼 업비트 의존도가 높은 케이뱅크도 ‘을’이 된 지 오래다. 소규모 인터넷은행과의 제휴로 리스크 관리 역량에 대한 지적을 끊임없이 받아온 업비트 입장에선 케이뱅크가 도리어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인 탓이다. 가상자산사업자 라이선스 갱신신고를 앞두고 있는 당장은 케이뱅크와의 제휴를 이어가고 있지만 갱신신고를 무사히 마친 후 더욱 전문성 있고 규모가 큰 은행으로의 전환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반면 케이뱅크는 올해 기업공개(IPO)도 추진하고 있는 만큼 더더욱 업비트를 놓칠 수 없는 상황이다.

고팍스와 실명계좌 제휴를 맺고 있는 전북은행도 이례적으로 고팍스와의 재계약에 나섰다. 당초 업계에선 전북은행의 실명계좌 연장 가능성을 낮게 점쳤다. 금융당국이 고팍스 지분의 약 67%를 보유한 최대주주 바이낸스의 불투명한 지배구조 등을 문제 삼으며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갱신신고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고팍스가 추진하고 있는 바이낸스 지분 매각이 마무리 되지 않는 이상 전북은행이 당국 제재 리스크를 안으면서까지 고팍스와 실명계좌 제휴를 이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예상을 뒤엎고 전북은행은 고팍스의 지분구조가 정리되지 않았음에도 일찌감치 계약 연장을 결정했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아직 금융정보분석원(FIU)의 변경신고 승인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국내 은행권 1위 KB국민은행이 가상자산 거래소와 실명계좌 제휴 계약을 체결하기까지 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상자산 거래소의 위상이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라며 “향후 가상자산 시장이 더욱 살아나 가상자산 투자자 유입이 늘면 뒤집힌 갑을 관계가 더욱 굳어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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