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매파적, 금융통화위원회는 비둘기파적이었다.”
22일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를 지켜본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 총재는 간담회 내내 ‘경고’와 ‘경계’라는 말을 수 차례 써 가며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대한 기대를 억누르는 모습이 역력했다. 부동산이라는 단어만 40번 넘게 썼다. 이 총재는 "현재 금통위원들은 한은이 과도한 유동성을 공급해 부동산 가격 상승 심리를 부추길 정도로 통화정책 운용을 하지 않겠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여러 지표들이 이 총재의 우려를 뒷받침한다. 한은이 최근 발표한 8월 주택가격전망지수는 118로 전달보다 더 올라섰다. 정부의 8·8 부동산 공급 대책 발표 이후인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보다 0.32% 오르며 약 6년 만에 가장 높은 주간 상승률을 기록했다. 금융당국도 뒤늦게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강화 방침을 내놓으면서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한은이 금리인하 신호를 강하게 줄 경우 부동산 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이날 이 총재는 10월 금리인하에 대한 확답을 주지 않았다. 금통위원 6명 중 4명이 3개월 내 금리인하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한다고 했지만 그것이 반드시 10월이라고 답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 총재는 ‘10월 금리 인하 기대감을 높게 가져갈 수 있느냐’는 질문에 “3개월 (포워드 가이던스에는) 10월뿐만 아니라 11월도 포함된다"면서 “10월 금통위에 나오는 경제 지표와 정부와의 정책조합을 통해 금리를 결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기준금리 동결도 만장일치로 이뤄졌다. 이 총재는 “금융 불안 시그널을 지금 막지 않으면 위험하다”며 “유동성 과잉공급으로 부동산 자극하는 실수를 하면 안 된다. 한은이 부동산 가격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금리를 낮춰도 인구 등 구조적 한계에 소비회복까지는 시차가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의 금리인하 요구에 부동산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답한 셈이다.이날 한은은 경제 전망치도 수정했는데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기존 2.5%에서 2.4%로 하향 조정했다. 물가 상승률은 2.6%에서 2.5%로 내렸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집값 상승 문제 때문에 10월 금리인하 기대를 의도적으로 낮춘 것으로 보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다음 달 금리인하 가능성이 매우 높고, 금통위원 대다 수가 3개월 내 금리인하를 예측한 만큼 이르면 10월, 늦어도 11월에는 한은도 피벗 대열에 동참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올해 남은 금통위(통방)는 10월과 11월, 두 차례다.
통화정책방향 문구도 “통화정책은 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하는 가운데”에서 ‘충분히’라는 말이 빠졌다. 사실상 다음은 인하라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시장의 반응도 비슷했다. 이 총재의 기자회견이 끝난 후인 오후 12시 31분 현재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2.905%로 전거래일 대비 0.035%포인트 하락했다. 5년물과 10년물 금리는 각각 0.031%포인트, 0.021%포인트 하락한 2.930%, 2.976%를 기록했다. 이 총재가 “시장금리 하락이 과도하다”고 했음에도 나타난 결과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은 “미국의 9월 인하는 확실한 것 같고 하반기 경제성장률에 따라 12월 추가 인하 가능성이 있다”며 “한은은 미국의 9월 인하를 확인한 뒤 (이르면) 10월에나 낮추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한은은 올해 10월 또는 11월 한 차례 0.25%포인트 내리 것으로 마무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건은 부동산 시장이다. 다음 달부터 2단계 DSR이 확대시행되고 금융당국이 정책대출도 조이기로 했지만 부동산 급등이 단기간에 진정되지 않을 경우 한은의 셈법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올해 6월 통화량(M2·광의통화)도 전년 대비 6% 이상 증가했다. 이날 금통위도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수도권 주택가격 및 가계부채 등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이승헌 숭실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현재의 부동산 과열은 서울에서 다른 지역으로 퍼질 수 있어 국지적인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며 “금리 인하 시점에서 부동산 잠재 수요가 만나면 지난 3년가량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환율에 대한 우려도 빼놓지 않았다. 다만 환율의 수준보다는 변동성이 금리 인하의 장애물이 된다고 언급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2원 내린 1333.6원에 거래를 시작했는데 7월 말 종가(1376.5) 대비 40원 이상 하락했다.한편, 대통령실은 이날 이례적으로 기준금리 동결 결정에 대해 아쉽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대통령실의 한 고위 관계자는 “금리 결정은 금통위의 고유 권한이지만 내수 진작 측면에서 보면 아쉬움이 있다”며 “다음 주 중으로 추석 명절 성수품 공급 등 민생 안정 대책과 함께 소비 진작 대책을 마련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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