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160조 원에 육박하며 성장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올들어 운용사간 점유율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양대산맥이던 삼성과 미래에셋자산운용 시장 점유율이 75% 밑으로 내려온 반면 한국투자신탁운용과 신한자산운용 점유율은 처음으로 각각 7%, 3%를 넘어섰다. 미국 빅테크 및 반도체 등 인공지능(AI) 관련주와 조선업, 미 국채 등 장기성장테마 상품군을 전략적으로 배치해 차별화된 운용전략을 내세운 운용사들이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이는 양상이다.
25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한국투자신탁운용의 ETF 순자산은 22일 기준 11조 635억 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시장점유율 7%를 넘어섰다. 지난해 말 5조 8600억 원대이던 순자산이 1년도 채 안돼 2배 가까이 급증한 셈이다. 이에 따라 점유율 3위인 KB자산운용 순자산과의 격차는 1조 원대로 좁혀졌다. 2022년 말만 해도 양사의 순자산은 2배 이상 큰 차이를 보였다.
신한자산운용의 순자산 증가율은 더욱 가파르다. 지난 2022년 말 7257억 원에 그쳤던 ETF 순자산은 지난해 말 2조 6447억 원으로 증가한 데 이어 22일 기준 4조 7172억 원을 기록해 2년여 만에 6.5배 급증했다. 같은 기간 삼성·미래에셋·KB자산운용 순자산 증가율이 2배 가량이고 한투운용이 3.8배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파죽지세의 성장세다. 이같은 성장세에 힘입어 신한운용의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3월 처음으로 1%를 넘어선데 이어 21일 3%를 넘어 확실한 5위권에 안착했다.
이처럼 중위권 운용사들의 괄목할 만한 성장으로 삼성과 미래에셋자산운용 시장 점유율은 각각 38.9%, 35.6%로 양사 합산 75% 아래로 내려왔다. 그간 시장을 양분해온 양강 체제에서 1, 2, 3위권 다툼이 치열해진 춘추전국시대로 점점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한투운용과 신한운용은 상반기 AI 반도체 등 시장 주도주를 편입한 ETF를 빠르게 출시했을 뿐 아니라 산업의 밸류체인을 세분화한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예컨대 신한운용의 ‘SOL 조선TOP3플러스’는 조선업 상승을 기대하며 2023년 상장한 상품으로 올들어 주식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는 시기에도 꾸준한 상승세를 기록하며 연초 이후 순자산 증가율이 2066%에 달했다. 또 투자자들의 월배당 니즈를 빠르게 파악해 국내 최초로 월배당 ETF를 내놓는 등 차별화된 전략도 투자자들을 이끌었다. 실제 미국 장기 국채를 기초자산으로 월배당을 위한 커버드콜 전략을 결합한 ‘SOL 미국30년국채커버드콜(합성)’ 순자산은 지난해 말 80억 원에서 8개월도 채 안돼 2000억 원 가까이 불어났다.
김정현 신한자산운용 ETF 사업본부장은 “특정 자산, 국가, 전략에 집중하기보다는 투자자가 공감할 수 있는 ‘내러티브’가 가미된 상품을 출시한 점이 주효했다”며 “투자자와의 적극적 의사소통을 통해 ETF를 적극 활용하는 자기주도형 투자자에게 효율적인 자산운용 방안을 제시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한투운용 역시 산업 트렌드를 주도하는 빅테크, 반도체 등에 집중한 상품출시와 더불어 세계적 베스트셀러 ‘칩워(Chip War·반도체 전쟁)’ 저자인 크리스 밀러 교수와 대담을 나누고 빅테크 전문가 아담 시셀 그래비티자산운용 대표 강연회를 개최하는 등 차별화된 콘텐츠를 제공했다. 이같은 노력에 한투운용은 올해만 ‘ACE 미국30년국채액티브(H)’와 ‘ACE S&P500’, ‘ACE 미국나스닥100’까지 순자산 1조 원 이상 ETF 3종을 배출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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