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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내수 등 곳곳서 정책 충돌…"우선순위 정해야"

[혼란 키우는 경제정책]

일관된 메시지 없는 오락가락 행보

시장불신 키워 정책여력 축소 자초

"가계부채 급증에 내수회복 어려워

부동산부터 안정화 목표 잡아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서류를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주말 “최근의 은행 가계대출 금리 상승은 금융 당국이 바란 것이 아니다”라며 “은행 자율성 측면에서 개입을 적게 했지만 앞으로는 부동산 시장 상황에 비춰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시행일을 7월 초에서 9월 초로 돌연 연기하면서 가계부채가 급증하자 정부는 은행들에 가계대출 관리를 주문했고 이에 따라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높였는데 금리가 너무 높다는 비판이 나오자 태도를 바꿔 강한 시장 개입 의지를 밝히고 나선 것이다.

정부가 적극적이고 노골적인 시장 개입에 전방위로 나서는 것은 시장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 말고는 더 이상 정책 수단이 남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달 초 8·8 부동산 공급 대책은 시장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고 재정은 이미 상반기에 올해 총량의 64%를 써버렸다. 부동산을 버리고 내수를 활성화하려 해도 가계부채가 급증해 통화정책의 보폭도 좁아졌다. 전문가들은 정부 규제·개입이 아닌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며 정책 우선순위부터 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6일 KB부동산 시세에 따르면 이달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2일 기준 12억 2900만 원으로 지난해 1월(12억 3900만 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22주 연속 상승한 결과로, 특히 강남 11개구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전월보다 1.58% 오른 14억 9249만 원으로 치솟으며 서울 평균 상승률(1.26%)을 뛰어넘었다. 정부는 부동산 공급을 늘리고 가계대출 규제를 강화해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하는 동시에 기준금리를 내려 내수 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큰 목표를 세웠지만 스트레스 DSR 2단계 적용 시기를 시행 1주일 전 갑자기 연기한 것과 같은 오락가락 정책이 부동산 시장 안정화는 물론 기준금리 인하를 통한 내수 시장 회복도 어렵게 만들었다.

실제로 스트레스 DSR 2단계 적용 시기를 늦춘 7월에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의 가계부채는 전월보다 7조 2000억 원 폭증했다. 이달에도 가계대출이 22일 기준 전월 대비 6조 8000억 원 늘어난 만큼 월말에는 가계부채 증가 폭이 7월을 웃돌 가능성이 높다. 물가상승률이 2% 중반대로 내려오면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출 만한 유인이 생겼지만 돌연 급증한 가계부채가 다시 통화 정책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중구난방식 정책이 이 같은 결과를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애초에 레고랜드 사태 때부터 부동산 공급 자금을 담당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을 틀어막고 고금리 시기에 금융회사들이 대출금리를 올리지 못하게 하는 등 금융감독원이 과도하게 시장에 개입한 것이 누적된 결과”라며 “한은 역시 경제·금융·통화 당국 수장 간 회의(F4)에서 적극적으로 정부와 싸우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렇게 가계부채가 늘어난 상황에서는 부채 상환이 더 급하기 때문에 금리가 내려가도 강한 내수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다”고 우려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를 잡는 데 올인했어야 하는데 부동산이 오르면서 정부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라며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니 강제로 대출 총액을 줄이게 하면서 한은에는 금리를 왜 안 내렸냐고 하는 것은 정부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증거”라고 꼬집었다.

부동산 이외 각종 경제정책에서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의 손발이 맞지 않는 것도 문제다. 정치권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특별회계를 신설하거나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도체 산업에 대한 국가전력망 설치·확충을 의무적으로 반영하는 등 반도체 산업 활성화 방안에 건건이 반대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여당은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국내에서 반도체 산업을 안정적으로 지원하려면 특별회계를 기반으로 한 안정적인 재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는데 기재부는 반도체 특별회계가 건전재정이라는 정부의 재정 운용 원칙에 부합하지 않아 안 된다는 불가론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대만처럼 보조금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기재부는 세제 지원이 옳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외에도 종합부동산세 완화를 두고서는 대통령실이 “종부세를 사실상 폐지하겠다”고 말했지만 세법개정안에는 종부세 폐지는 물론 완화안이 언급조차 되지 않아 엇박자를 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강 교수는 “정부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듯한데, 부동산 정책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그나마 나은 궁여지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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