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기술을 악용해 타인의 사진을 음란물에 합성하는 허위 영상물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데이터를 파기해주는 ‘디지털 장의사’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딥페이크 피해자들의 의뢰도 있지만, 되레 가해자들이 자신의 활동 기록을 지워 달라며 문의하는 사례가 대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1일 불법 게시물 삭제 전문업체 탑로직 관계자는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일반 문의를 제외하고 딥페이크와 관련한 문의가 하루 10건 이상 접수되고 있다”라며 “현재 가해자 혹은 텔레그램 채팅방 이용자 측에서 들어오는 문의가 대부분이다. 가해자 부모의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디지털 장의사들은 가해자 측 의뢰를 거절하고 있다. 그는 “딥페이크 불법 영상물이 유통되는 채널인 텔레그램의 경우 보안 메신저이기 때문에 디지털 장의사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며 “문의를 하는 가해자에게는 기록 삭제 시도를 하기보다는 교육기관이나 수사기관에 자수를 하라고 권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적 조언 구하기에 나선 가해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형사 전문 로펌이나 법률사무소 등에서 개설한 온라인 카페 등에는 딥페이크 성범죄와 관련한 문의가 쇄도하는 상황이다. 한 딥페이크 성범죄 관련 카페에는 최근 일주일 간 가해자들로 추정되는 누리꾼들이 남긴 상담 게시글로 가득했다. 한 누리꾼은 “딥페이크 텔레그램 채팅방에 들어가 있었다면 미성년자도 처벌을 받냐”는 내용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일부 로펌 및 법률사무소 등은 본격적으로 가해자들을 타깃으로 수임에 나서 빈축을 사고 있다. 한 로펌은 카페에 “(피해자와) 쉽게 합의를 하면 안 된다”며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은 부분 등을 파고들고 반성하는 태도를 함께 보여야 한다”고 감형을 받는 방법을 공유했다. 다른 로펌은 “자녀가 딥페이크와 연루돼 있다면 변호사의 자문을 받아야 한다”며 홍보하기도 했다. 실제 성범죄와 관련한 승소 사례를 올린 로펌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가해자가 온라인 상에 보관하고 있던 불법 영상을 직접 지운다면 증거인멸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디지털 장의사 등을 통해 삭제를 요청한다면 증거인멸교사죄를 물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학계와 법조계 등에서는 재판 단계에 들어가면 이러한 삭제 행위가 증거인멸이 아닌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형사 전문 법무법인 청의 곽준호 대표 변호사는 “삭제 행위를 증거인멸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자신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줄이려고 하는 시도의 일환으로 보일 수도 있다”며 “본인이 자신의 증거를 직접 없애는 것은 증거 인멸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법적으로) 별도의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로도 유사한 사례가 감형 사유로 적용된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월 서울고등법원은 13세 피해자의 신체를 몰래 촬영해 이를 유포할 것처럼 협박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18세 A 씨에 대해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인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유지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이 해당 촬영물을 스스로 삭제하고 범행을 반성하고 있고, 피고인의 가족들이 피고인의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는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언급했다.
임종인 대통령비서실 사이버특별보좌관(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명예교수)는 “증거인멸죄와 자기방어권은 상호 충돌 관계”라며 “딥페이크 성범죄물 등을 통해 금전적 이득을 취하거나 유포 규모가 큰 악질적인 가해자의 경우에는 처벌이 이뤄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 관계자는 “증거인멸죄 적용 가능 여부에 대해 언급하기 조심스럽다”라며 “내부적으로 검토가 필요한 단계”라고 밝혔다.
통상 증거인멸 시도는 수사단계에서 구속영장 신청 사유가 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미성년자 피의자가 다수일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영장 청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한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경찰에 신고된 허위영상물 사건 피해자는 총 527명이었으며, 그 중 59.8%에 해당하는 315명이 10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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