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를 지난 중인 인텔이 2015년 167억 달러에 인수했던 프로그래머블 반도체(FPGA) 부문 ‘알테라’ 매각을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연초 알테라를 분사한 후 3년 내 기업공개(IPO)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제시했으나 실적 악화에 따라 급히 현금이 필요해진 탓이다. 인수자로는 스토리지·네트워크 반도체가 주력인 마벨 테크놀로지 등이 언급되지만,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인수합병(M&A)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인텔 경쟁사 AMD가 손에 넣은 FPGA 1위 ‘자일링스’ 인수자로 삼성전자가 거론된 바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알테라를 인수한다면 파운드리 내부 수요를 늘리는 한편 네트워크·전장에서도 시너지를 노릴 수 있다는 평가다.
1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은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9월 중 이사회 회의를 통해 알테라 매각 등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한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인텔이 알테라 IPO 대신 완전 매각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파운드리 복귀를 천명하고 거액의 투자를 이어온 인텔은 막대한 설비투자 부담에 실적이 악화된 상태다. 강력한 지배력을 지니고 있던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에서도 입지가 흔들리며 1968년 창업 이래 최악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에 겔싱어 CEO는 투자은행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와 함께 인력 15% 감축을 비롯한 여러 구조조정 계획을 논의 중이다. 인력 감축 외 연초 회계를 분리하며 장기적인 분사 후 IPO 계획을 공개했던 파운드리의 조기 분사와 외부 투자 유치 등이 거론된다. 320억 달러 규모의 독일 파운드리 건설 백지화와 건설 중단도 유력하다. 주가 하락에 따른 이사회와 투자자 압박이 거센 만큼, 9월 중 이사회 회의에서 구체적인 구조조정 방안을 공개하고 ‘재신임’을 받기 위한 행보다.
파운드리와 달리 알테라는 이미 분사가 완료돼 즉각적인 매각이 가능한 점이 매력적이다. 파운드리는 정부 차원 ‘리쇼어링’ 정책의 핵심 사안인 만큼 미국이 외부 매각을 허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FPGA는 상대적으로 ‘전략적 가치’가 떨어져 몸이 가볍다. 실제 로이터는 “파운드리 매각은 구조조정안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전했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FPGA의 매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장점도 ‘몸값’을 높일 수 있는 요소다. 실제 AMD는 인텔의 알테라 인수 5년 후인 2020년 FPGA 분야 1위 자일링스를 350억 달러에 인수한 바 있다.
FPGA는 CPU나 그래픽처리장치(GPU), 주문형반도체(ASIC)와 달리 생산 된 이후에도 재 프로그래밍할 수 있어 필요에 따라 변형이 가능한 ‘만능 기판’이다. CPU보다는 단순 작업에 능하고 한 작업에만 특화한 ASIC보다 범용적인데다 복잡한 설계도 가능하다. 시대에 맞게 업데이트도 가능해 AI, 로봇, 방산, 자율주행차, 네트워크 장비 등 용처가 확대되고 있다.
현재 알테라 잠재 인수자로 거론되는 기업은 마벨이다. 마벨은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컨트롤러와 네트워크 장비 등을 설계하는 기업으로 FPGA 기업 인수 시 시너지가 예상된다. 반도체 업계 일각에서는 삼성전자 또한 알테라에 관심을 보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삼성전자는 알테라가 인텔에 인수되기 전까지 네트워크 장비 분야에서 깊은 협력을 맺어오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AMD가 자일링스를 인수하기 전까지 유력한 인수자로 거론되는 등 FPGA 사업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삼성전자가 연초 공개한 AI 가속기 ‘마하1’ 또한 FPGA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네트워크·자동차 전장 등 FPGA 유력 기업 인수 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분야가 넓다. 파운드리에서 FPGA를 만들고, 이를 삼성전자 네트워크 장비와 전장 등에 활용하는 방안이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1위에 오르겠다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선 대형 반도체 M&A가 필수”라며 “최근 삼성전자의 노키아 인수설 등이 흘러나오는 와중 더욱 매력적인 매물인 알테라가 시장에 등장한 만큼 참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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