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1년 만에 단일 국민연금 개혁안을 내놓았지만 이를 다룰 정치권의 논의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여당은 올해 성과를 내자는 입장인 반면 야당은 소득보장성을 더 강화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연금 개혁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만큼 정치권이 진전을 보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5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연금 개혁을 미루면 큰 문제가 생긴다”며 “이번 정기국회가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 역시 이날 “이제부터는 국회의 시간”이라며 “당장 논의를 시작해 올해 안에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자”고 밝혔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안에 대한 공세를 이어갔다.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안은 보험료는 올리고 수급액은 깎겠다는 것”이라며 “우리 모두의 노후 소득 보장을 불안하게 만드는 방향”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소득대체율을 2%포인트를 올린다는 것도 현 상태 유지에 불과하다”며 “세대별 보험료 차등 인상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졸속 정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권 주도로 열린 전문가 기자 간담회에서는 자동 조정 장치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자동 조정 장치는 가입자 수 감소나 기대여명 증가와 같은 인구구조 변화에 맞춰 급여액을 자동 삭감하는 제도다. 소득보장론자인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정부안대로면 1992년생의 생애 총연금액은 기존 대비 80.72%로 떨어지게 된다”며 “연금이 대폭 삭감되는데, 청년 세대의 피해가 크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정부안을) 국회에서 논의할 가치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날을 세웠다.
정치권은 연금 개혁을 논의하는 방식부터 엇갈리고 있다. 민주당은 우선 복지위에서 정부안을 검토하는 과정을 거치겠다는 입장이다. 복지위 야당 간사인 강선우 의원은 “개혁안을 어떻게 논의할지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내용을 선별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연내 특별위원회를 발족해 성과를 내자는 입장이다.
국회 논의를 지켜봐야 하는 정부는 애가 타고 있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은 이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24개 나라에서 자동 조정 장치를 운영 중”이라며 “제도를 만들 때 연금 수령액이 줄어들지 않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최소한 낸 만큼은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40%(2028년 기준)에서 42%로 인상하기만 해도 2093년 누적 적자 규모는 1경 3728조 원으로 7941조 원 줄어든다. 재정안정론자인 윤석명 전 한국연금학회장은 “소득대체율 42%의 수지 균형을 위해서는 보험료를 20.8%를 걷어야 한다”며 대폭적인 보험료 인상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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