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전통주는 안동 소주, 진도 홍주, 강원 옥선주 등 타 지역 전통주에 비해 지명도가 높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주류계 아카데미상 격인 농림축산식품부 주최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등 주요 주류 행사에서 굵직굵직한 상을 거머쥐면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연천율무 수제막걸리(연천) △경성과하주(여주) △씨 막걸리 시그니처큐베(양평) △하얀까마귀(오산) △술취한원숭이(용인) △남한산성소주(광주) 등 20 여 가지 경기 전통주는 추석 명절을 맞아 가까운 이들에게 선물하기 알맞은 고품질 전통주다.
경기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단순히 수상실적때문만은 아니다. 시대적 흐름과 무관치 않다. 2009년 막걸리 애호가인 이명박 대통령이 ‘막걸리 홍보팀장’을 자처하면서 중·장년 남성이 마시는 것으로 치부하던 막걸리에 대한 관심이 젊은 층에서 일었다. 경기도농업기술원은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춰 2008년부터 전통주 연구를 시작했다. 2009년 한·일 정상회담의 건배주로 활용된 자색고구마 막걸리, 우리술품평회의 대통령상을 받은 호담 산양산삼 막걸리는 초창기 연구의 결과물이다. 공공기관의 관심은 민간으로 확산돼 민간 소믈리에 양성 과정에 ‘전통주’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평택의 농업법인 ‘좋은 술’ 이예령(59) 대표도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한 민간 소믈리에 양성과정을 밟고 전통주에 발을 들여놓았다. 부사장을 맡고 있는 남편 김상우(62)씨와 함께 전통주 제조 전 과정을 도맡아 하는 그는 십여 년 전까지만해도 전업주부로서 “술 한잔 못했다”고 털어놓았지만 경기 전통술의 가능성을 믿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주말도 잊은 채 고품질 전통주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 끝에 대표상품 ‘천비향’이 지난 2018년과 2020년 우리 술 품평회 대상을 받으며 국가 공식 건배주로 이름을 올렸다. 밑술 한 번에 네 번의 덧술 과정을 거치는 이른바 ‘오양주’ 기법으로 빚어낸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소비자의 미각을 파고들면서 4인 기업에 불과한 ‘좋은 술’의 매출액은 2013년 3000만원에서 지난해 5억원으로 상승했다.
경기 전통주가 갖는 위상은 2020년대 들어서면서 코로나19로 한층 성장했다. 바깥 출입이 봉쇄된 상태에서 ‘혼술족’(혼자 마시는 술)이 늘면서 주류 중 온라인 주문이 유일하게 가능한 전통주가 인기를 끌었다. 폭음이 아닌 자신의 취향을 중시하면서 술을 음미하는 이들이 이 인기를 주도했다. 감미료와 첨가된 거대 주류회사의 술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라는 후기가 함께했다.
경기 전통주의 성장세는 호남지역과 더불어 최대 곡창지로 손꼽히지만 쌀 소비 감소라는 난제에 부딪힌 경기도가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취한 일련의 조치와 맞물려 있다.
경기도는 2017년 ‘경기도 지역 전통주 산업 육성 및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해당 조례는 경기도 전통주의 △개발·복원 및 품질향상을 위한 사업 △시설지원 △교육훈련 △품평회 △홍보 등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경기도농수산진흥원이 주최하는 ‘경기주류대상’은 고품질 전통술의 등용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경기도에 따르면 현재 200여개 전통주 양조장이 31개 시·군에 산재해 있다. 각 양조장에서는 경기미(米)를 중심으로 한 지역 농산물을 기반으로 한 전통주를 생산하고 있다. 경기도는 지자체 중 인구수가 가장 많아 시장이 넓은 데다 서울과 가까워 유행에 민감한 지리적 특성이 있다. 경기미 뿐만 아니라 첨가할 수 있는 고구마, 과일 등 고품질의 재료도 장점이다. 게다가 여기에 새로운 술을 개발하려는 젊은 양조인들이 타 지역에 비해 많아서 전체적으로 전통주를 선도하기 좋은 인프라를 갖고 있다.
이대형 경기도농업기술원 소득자원연구소 지방농업연구사는 “전통주는 국산 쌀과 국산 농산물을 소비하는 대표적인 가공 제품”이라며 “전통주의 과감한 규제 완화와 다양한 지원책을 통해 전통주의 소비가 증가하게 된다면 우리 농민들의 안정적인 쌀 소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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