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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플랫폼’ 사전지정 안 한다지만…국내기업 역차별 우려 여전

한발 물러 선 공정위…플랫폼법 대신 공정거래법 개정 확정

공정위, 임시 중지 명령 도입

국내기업 역차별 우려 여전…업계 "이중 규제" 반발

전문가 "새로운 경쟁 유도가 바람직"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 및 티몬·위메프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공정위의 입법 방향에 관해 설명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시장 독점력을 가진 거대 플랫폼을 사전 지정해 규제하는 플랫폼법 제정을 하지 않고 기존 법률 개정으로 선회한 것을 놓고 업계과 여당의 반발을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여전히 국내기업 역차별 우려가 있다는 비판과 함께 이중 규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9일 ‘플랫폼 공정 경쟁 촉진 및 티몬·위메프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입법방향’을 발표했다.

공정위는 플랫폼법 추진 대신 사후 규제 방식을 유지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매출 4조 원 이상 업체 가운데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업체에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최혜대우 요구 등 4대 행위를 플랫폼법 제정 대신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금지한다. 1개사 점유율이 60% 이상이고 이용자가 1000만 명을 넘거나 3개 이하 업체의 점유율이 85%, 이용자 2000만 명 이상이 대상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네이버와 카카오, 구글, 애플이 대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쿠팡과 배달의민족은 매출액 기준에 못 미쳐 법 적용 대상에서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해 12월에 플랫폼법 추진을 공식화한 이후 사전 지정제가 포함된 플랫폼법 제정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다. 하지만 9개월 간의 논의 끝에 사전 지정제는 최종 법안에서 빠진 것이다. 업계, 전문가, 관계부처 의견 등을 종합 검토하여 사전 지정에서 사후 추정으로 바뀐 것으로 공정위가 사전 지정에 대해 업계의 강한 반발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정위도 업계 반발이 주요 변수였음을 인정했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9일 브리핑에서 “여러 가지 종합적인 고려 속에서 고민을 한 결과 사전 지정에 대한 어떤 반발이나 거부감이 상당하다는 의견이 있고 그 점을 고려해서 대안적으로 저희가 사후 추정이라는 제도를 검토하게 됐다”고 밝혔다.

특히 사전 지정이 포함된 플랫폼법은 과잉 입법이라는 행정 기관의 분석 결과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플랫폼의 자사우대 행위를 제한하려면 사후 규율이 적절하며 그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집행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온 것이 결정타였다. 당시 김민정 KDI 연구위원은 “자사우대 행위는 경쟁제한적 효과와 경쟁촉진적 효과를 함께 가질 수 있고, 전체적인 효과도 일의적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며 사실상 공정위를 겨냥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실제 자사우대는 현재 공정위가 추진 중인 4대 반경쟁행위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공정위는 알고리즘 조작 등으로 자사 상품을 경쟁 상품보다 유리하게 취급하면 반경쟁행위로 봤는데, KDI는 자사우대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도 언급한 것이다.



거기에다 여당 내부에서도 업계의 반발이 큰 플랫폼법 추진에 대한 거부감이 커서 공정위가 사전 지정제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애초 공정위는 사전지정을 포함한 플랫폼법 추진에 의지가 강했지만, 여당·대통령실과 의견 조율을 하면서부터 기류가 바뀐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정부는 사전 지정이 빠진 대신에 거대 플랫폼의 4대 반경쟁행위에 대한 제재 수단을 강화해 규제 의지가 약해진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임시중지명령 제도이다. 임시중지명령은 4대 반경쟁행위 위반의 명백한 의심이 들고, 회복 곤란한 경쟁 제한 또는 다른 플랫폼의 손해 확산 우려로 예방의 긴급 필요성이 인정될 경우 공정위가 해당 플랫폼에 대해 반경쟁행위를 임시 중지할 수 있는 권한이다. 공정위는 이같은 제도가 제외된 사전지정제를 사실상 대신하는 강력한 규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 법 위반 억제력 확보를 위해 과징금 상한을 기존 6%에서 8%로 상향 조정했다. 한기정 위원장은 이날 “지배력이 굉장히 강한, 지배적 플랫폼을 대상으로, 아주 소수의 플랫폼을 대상으로 규율을 하는 문제여서 요건이 비록 엄격하게 되어 있다”면서도 “이 사안에 관해서는 엄밀히 잘 판단해서 임시중지명령이 꼭 필요한 경우에는 적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공정위의 이같은 법 개정 움직임이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글로벌 공룡 플랫폼인 구글의 경우 국내에서 10조 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공시된 구글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액은 3653억 원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구글은 ‘연 매출 4조 원 이하’ 기업으로 분류돼 플랫폼 규제 대상에서 빠진다. 지난해 국내 시장 공략을 본격화한 중국 e커머스 플랫폼 알리와 테무 등도 규제에서 제외될 것이 확실시된다. 반면 지난해 매출이 각각 9조 6700억 원과 7조 5570억 원인 네이버와 카카오는 ‘지배적 플랫폼’으로 규율 대상이다. 국내 한 업계 관계자도 “이미 비상식적 거래가 해외 플랫폼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면서 “국내 업체 입장에서 가격경쟁 면에서 해외에 밀릴 수밖에 없는데 사후 추정까지 더해지면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특히 현행 공정거래법으로 충분히 제재할 수 있는 불공정 행위를 추가로 규제한다는 ‘이중 규제’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공정위가 제시한 ‘4대 반경쟁 행위’는 현행 공정거래법으로도 제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e커머스 업계도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아직 규제 대상을 결정할 기준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지만 이제 막 몸집을 불리고 있는 중소 플랫폼의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거래 대금 1조 원 이상 플랫폼을 대규모 유통 업자로 본다면 무신사와 에이블리 등 버티컬 플랫폼 대부분이 대규모유통업법의 영향을 받게 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치열한 생존 경쟁을 펴고 있는 글로벌 IT 업계에서 규제보다는 새로운 경쟁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선순환을 이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가 소비자 피해 발생을 막기 위해 신경을 써야 하지만 규제가 지나치면 새로운 혁신을 가로막을 수 있다”며 “오픈AI의 챗GPT가 구글의 검색 시장 독점력을 일정 부분 와해시킨 것처럼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플랫폼 간 경쟁을 촉진시켜야 산업 생태계를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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