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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황이 나섰다는데"… 초격차 균열에 삼성의 '굴욕' [줌컴퍼니]

터무니 없는 루머 돌아도 속수무책

기술 초격차 해자 균열 조짐

여의도 증권가도 목표가 줄 하향

인적쇄신, 속도감있는 성과 시급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6월 대만에서 열린 컴퓨텍스 2024에서 자사 칩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추석연휴를 앞두고 전자업계에 '지라시' 하나가 돌았습니다. 인공지능(AI) 산업계의 황제로 통하는 젠슨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전영현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 부회장과 미팅을 가졌다는 내용입니다.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지라시는 하루에도 몇 건씩 돌아다니지만 이번에는 그 내용이 자못 씁쓸했습니다.

지라시에 따르면 황 CEO는 "삼성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엔지니어들을 믿을 수 없다. 우리는 당신들의 고객이지 직원이 아닌데 자꾸 전화로 물어보고 일을 요청하지 말라"고 강하게 질책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황 CEO가 추석 연휴가 지난 뒤 방한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만날 것이라는 별도의 지라시가 돌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지라시에 대한 삼성의 공식입장은 "확인해 줄 수 있는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황 CEO 정도의 세계적 중량급을 갖춘 인물이 다른 나라 협력회사의 일하는 문화를 질책했다는 사실을 곧이 곧대로 믿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도체(DS) 사업부 내부의 기류는 복잡합니다. 갑을 관계를 떠나서 천하의 삼성이 이런 취급을 당할 정도로 위상이 떨어졌다는 자조 때문입니다.

"SK하이닉스는 더 이상 우리를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전영현 부회장이 취임 직후 내부 회의에서 직접 말했다고 알려진 이 발언에 삼성의 내부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기술 초격차로 해자(垓子)를 구축하고 경쟁자들을 물리치던 삼성 특유의 문화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이 평택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그레그 애벗 미국 텍사스주 주지사와 악수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와 관련된 주요 동향을 살펴보겠습니다.

①계속 지연되는 5세대 HBM 엔비디아 납품

②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S 25에 자체 AP 엑시노스 탑재 포기설(說)

③미국 테일러 파운드리 팹 가동 지연설(說)

④해외 지사 인력 구조조정

다소 과장이 있을지언정 최근 삼성과 관련한 뉴스 중 긍정적인 내용은 사실 찾아보기 어려운 게 냉정한 현실입니다.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던 철옹성에 균열이 일기 시작하면서 외부 공세도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KB증권(13만원→9만5000원), 한국투자증권(12만원→9만6000원), DB금융투자(11만원→10만원), 현대차증권(11만원→10만4000원), 유진투자증권(11만원→9만1000원)

최근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한 주요 여의도 증권사들의 명단입니다. 팔자(sell) 보고서를 거의 내지 않는 국내 증권업계의 성향을 감안하면 일제히 공세로 돌아선 셈입니다. 삼성전자 IR의 '수비'가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다는 신호로도 볼 수 있습니다. 해외 연기금 투자자나 투자은행(IB)들의 반응은 이보다 더 냉랭하다고 합니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전경. 연합뉴스


내부도 시끄럽습니다.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4분기부터 또 다시 파업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평균 연봉 1억2000만원의 노조가 '자사제품 불매'를 외치고 "이번에는 생산에 피해를 반드시 주겠다"고 말하는 모습은 내부 어딘가에 분명한 왜곡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게 재계 인사들의 한결같은 분석입니다. 민주노총이 전삼노 집행부와 사실상 '한몸'으로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시민단체 반올림까지 노조에 가세해 내부 갈등의 불씨를 키우고 있습니다.

최근 만난 재계와 반도체업계, 자본시장의 고위 관계자들에게 삼성의 해법을 물어보았습니다. 답변은 각양각색이었지만 대체로 3가지로 추려낼 수 있었습니다.

첫째, 인적쇄신입니다. 전 부회장이 DS 부문 수장을 다시 맡기는 했지만 조직 전체에 충격을 던져줄 수 있는 수준에는 못 미쳤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습니다. 삼성전자는 통상 11월께 정기인사를 실시하는데 이번 인사의 폭과 내용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입니다.

둘째는 속도입니다. 과거 삼성은 경쟁사에 뒤쳐지는 조짐이 있으면 무시무시한 속도로 격차를 따라잡아 고객사들에게 결과물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HBM 납품 문제에서 보듯이 최근에는 그 속도가 답답할 정도로 느려졌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물불 가리지 않고 일단 성과부터 내야 실마리가 풀려나간다는 것입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만에 하나 엔비디아에 대한 5세대 HBM3E 납품이 연내 해결되지 않고 6세대 HBM4부터 시작이라든지 하는 말이 나오면 문제가 정말 심각해질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CES 2024에 전시된 하만의 디지털 콕핏 제품. 연합뉴스


마지막으로는 외부 인수합병(M&A) 입니다. 삼성이 빅딜이라고 할 수 있는 M&A를 단행한 것은 2016년 하만(전장사업)을 9조 원에 인수한 것이 마지막입니다. 하만은 인수 직후 실패한 딜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으나 지난해 영업이익 1조 원을 돌파하는 등 끝내 턴어라운드에 성공했습니다.

삼성의 M&A는 과거 '국정농단' 사태와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사실상 중단된 상태입니다. 이 기간 공격적 투자 DNA는 실종되고 비용절감 같은 보수적 투자문화가 자리잡았다는 게 IB업계의 진단입니다. 주력 사업이 어려움을 겪는 위기일수록 신사업을 찾아내는 역동성을 보여주지 않으면 조직 전체가 더 침체될 수 있다고 재계는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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