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는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반도체 투자 프로젝트다. SK하이닉스(000660)가 2019년부터 122조 원의 사업비를 투자해 건설하는 반도체 클러스터(일반산업단지)와 삼성전자(005930) 주도의 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를 합한 것으로 두 회사가 용인에 투자하는 금액만 482조 원에 이른다. 정부도 6월 금융·세제·재정·인프라 지원 등을 아우르는 26조 원 규모의 ‘반도체 생태계 종합 지원 추진 방안’을 발표하며 측면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정부 지원에 대한 산업계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이미 제도를 갖추고도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도체 인프라 시설에 대한 보조금 제도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2022년 반도체·배터리·디스플레이·바이오 등 국가첨단전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관련 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라 지정된 특화단지는 용수와 전기, 도로, 폐수 처리 등 산업 기반시설에 대한 국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용인 메가 클러스터도 전국에 지정된 7개 특화단지에 포함됐다.
문제는 이 같은 지원이 ‘코끼리 비스킷’ 수준이라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34년까지 용인 메가 클러스터의 용수관로를 설치를 위해 1조 1000억 원 안팎을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용수로 설치와 관련해 정부 보조금을 받은 것은 지난해 SK하이닉스의 250억 원이 전부다. 투자 대비 보조금 비율은 2.3%다.
환경부는 “SK의 경우 일반 산단이어서 원래는 수자원공사 지원도 못 받지만 정부 고시를 바꿔 수자원공사가 비용의 70%를 지원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반도체 같은 국가 전략산업은 더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직 정부 고위관계자는 “공업용수는 사람으로 치면 대동맥과 같다”며 “최소한 산단 앞까지는 정부가 책임지고 용수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기업들은 겉으로 표현하지만 않을 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져야 할 기반 인프라 시설 비용을 떠맡는 데 대한 불만이 있다. 용인 메가 클러스터는 부지가 넓어 기반시설 구축에 많은 비용이 든다. 국토균형발전 원칙이 담긴 수도권정비계획법도 적용받는다. 비수도권에서는 정부가 부담하는 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내야 한다는 얘기다.
폐기물과 폐수 처리 시설 비용도 기업들이 져야 한다. 용인 첨단 시스템반도체 국가산단에서 발생하는 폐기물 처리를 위해 삼성전자가 최소 1500억 원 이상의 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으로 추산된다. 폐기물 매립의 경우 민간에서 자본을 투자해 처리 시설을 설치한다. 이후 기업으로부터 폐기물 처리 비용을 받아 초기 투자 비용을 뽑는다. 사실상 입주 기업이 비용을 부담한다. 폐수 처리 시설과 폐수 관로 설치 비용까지 포함하면 부담은 더 늘어나지만 정부 보조금은 없다.
전력 인프라는 적기 구축이 관건이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반도체 같은 첨단산업의 전력 의존도는 다른 산업 대비 최대 8배 높다. 전력 설비 확보가 필수다.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공장은 내년부터, 삼성전자는 2026년부터 공사에 들어간다. 수도권 전력 수요의 25%에 달하는 10GW 이상의 신규 전력 수요가 예상된다. 한경협의 한 관계자는 “급증할 전력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는 고압 송전선로를 설치하거나 발전소를 새로 지어야 한다”며 “비용도 부담이지만 지역 주민의 민원으로 송·배전망 구축 일정이 지연되는 것도 큰 리스크”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인프라 보조금을 대대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국비 지원의 경우 실시 설계를 마치고 예산을 교부하는 당해 연도에 공사 착공이 가능한 시설에만 1회 지원이 원칙이다. 단지 한 곳당 보조금 한도도 500억 원을 넘지 못한다. 이 규정대로라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가 클러스터에 482조 원을 투자하고도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인프라 보조금은 고작 1000억 원에 불과하다. 단년도 지원으로 돼 있는 규정을 다년도 지원으로, 단지별 보조금 예산 한도도 사업 성격과 규모에 맞게 단지별로 조정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가 각각 발의한 반도체 특별 법안은 인프라 투자 보조금을 명시하고 있다.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반도체특별법에는 전력과 용수 공급을 위한 산업 기반시설을 국가와 지자체가 직접 설치하고, 비용도 정부가 부담하도록 규정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월 대표 발의한 법안에도 전력·용수·도로 등 기반시설 조성에 관한 정부 책임 의무화 조항을 담았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유럽은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쏟아붓고 있다”며 “건전 재정보다 전략산업이 우선이라는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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