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은행의 대출 규제가 본격화하면서 9월 들어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둔화됐지만 ‘수도권 쏠림’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수도권 집값을 잡기 위해 전방위 가계대출 규제를 시행했지만 비수도권 대출이 수도권보다 훨씬 크게 줄어 규제 효과가 일부 상쇄된 것이다. 대출이 막힌 금융 소비자들의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이 더 강해져 수도권 주담대 증가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 19일 기준 4개 은행(KB국민·신한·하나·NH농협)이 이달 들어 신규 취급한 주담대에서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69.2%에 달했다. 이들 은행의 신규 주담대 취급액에서 수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올 6월 56.5%, 7월 55.9%, 8월 54.9% 등 점차 축소되다 이달 들어 약 70% 가까이 확대된 것이다.
9월 들어 19일까지 수도권과 비수도권 주담대를 전월과 비교하면 이 같은 현상이 확연히 드러난다. 이 기간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의 주담대 신규 취급액은 2조 1069억 원으로 지난달 4조 2447억 원보다 절반가량 줄었지만 비수도권의 신규 주담대는 9355억 원으로 8월(3조 4763억 원)보다 73%(2조 5408억 원)나 축소됐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 규제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기조가 줄어들고 있지만 지방에 비해 수도권에서는 그 효과가 미진할 수밖에 없다”며 “금융 소비자들의 서울 아파트 등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꾸준히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워낙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당국은 이달부터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시행하면서 수도권 주담대에 대해서는 1.2%포인트, 지방에서는 0.75%포인트의 스트레스 금리를 차등 적용했다. 또 일부 은행은 1주택자가 수도권 주택을 매수하는 목적의 주담대를 내주지 않고 있다. 이처럼 수도권 대출 증가세를 잡기 위해 비수도권에 비해 더 강한 규제를 적용했지만 결국 수요가 적은 지방 주택 수요가 급감하면서 비수도권 대출이 급감한 것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수도권 부동산에 대한 선호도 등 심리적 요인이 크다”며 “은행들의 주담대 심사 기준이 수도권에서 느슨하게 풀어진 영향도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수도권에 비해 급등하는 수도권 주택 가격도 대출 규제 효과를 약화시켰다. 최근 주택 가격은 수도권은 상승하는 반면 지방은 하락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전국 주택 가격 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 8월 수도권의 주택 매매가격지수는 전월 대비 0.53% 상승한 반면 지방은 0.04% 하락했다. 서울의 상승 폭은 0.83%로 더욱 컸다. 특히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달 대비 1.27% 올라 2018년 9월(1.84%) 이후 71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하며 주택 매매가격 상승률을 견인했다. 가격이 오르자 매수세도 거세졌다. 분양평가 전문회사 리얼하우스에 따르면 이달 20일 기준 올해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4만 649건으로 지난해 전체 거래량보다 6600여 건이나 많았다.
전문가들은 고강도 대출 규제가 오히려 수도권 대출 쏠림 현상을 자극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투자자들은 지방에 주택 여러 채를 보유하는 것보다 강남 아파트 하나에 올인하는 게 더 수익이 높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며 “고강도 대출 규제가 지방으로 분산될 수요를 수도권으로 더 몰리게 만들어 ‘수도권 쏠림’을 자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도 “지방은 아직 부동산 시장 회복이 더딘 상황이라 고객 수요와 실제 대출 모두 담보 가치가 높은 수도권으로 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