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반도체·배터리 산업을 중심으로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반도체 분야에선 미국이 자국 내 투자 인센티브 강화 등을 통한 중국 압박을 이어가며 경쟁 분야를 인공지능(AI)·양자컴퓨터까지 넓힐 전망이다. 배터리 분야에선 탈중국 공급망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혜택이 축소된다면 국내 기업들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견해도 제시됐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와 한미협회는 2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한미 산업협력 콘퍼런스'를 열고 미국 대선 결과가 반도체·배터리 산업에 미칠 영향을 논의했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대선 결과에 관계없이 미국의 중국 견제와 자국 내 투자 확대 기조는 계속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반도체 삼국지'의 저자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는 주제 발표에서 “미·중 패권 경쟁은 반도체를 넘어 AI·양자컴퓨터 등으로 확전될 것”이라며 “AI 반도체는 국가대항전에 더해 엔비디아 연합 대 미국 IT·첨단기업 위주로 형성된 반(反)엔비디아 연합(UA링크)간 대결 구도로 발전할 것이기 때문에 국내기업들의 전략적 판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되면 동맹국과 함께 코콤(COCOM·대공산권수출조정위원회) 2.0 같은 첨단기술 수출통제 기구를 결정해 중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큰 데 반해 공화당이 집권할 경우 중국 압박 수단이 칩스법 가드레일 조항과 보조금 수령을 위한 동맹국 투자요건을 강화하는 형태로 전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게리 클라이드 허프바우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다음 대통령 임기 동안 반도체 산업의 주요 관심사는 AI가 될 것이라 고성능 반도체와 인재 확보가 필수”라며 “중국 반도체 수출 금지 품목은 그래픽처리장치(GPU)와 3D 메모리가 중점 대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배터리 분야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시 IRA 혜택 축소 가능성이 있는 만큼 국내 기업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배터리 전쟁’의 저자 루카스 베드나르스키는 “트럼프가 된다면 IRA 혜택이 축소되어 한국 배터리 기업도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한미 양국 기업과 대학 간 공동 연구개발(R&D) 추진과 함께 한국 배터리 스타트업들이 미국 벤처자본과 연계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최종서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총괄본부장도 “트럼프 재집권 시 행정부 권한을 활용해 IRA 지원규모를 축소시킬 경우 우리 기업들의 피해가 불가피할 것”이라며 “올해 시행된 공급망기본법 등을 활용해 중국산 저가 제품과의 가격 차이를 좁히고, 국내 배터리 소재 사업을 육성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반면 탈중국 공급망 정책이 한국 기업들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박재범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한국은 배터리 원료인 광물가공과 소재, 배터리 제조와 전기차 전체 밸류체인에서 중국의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는 국가”라며 “정부 차원에서 한국 기업들의 광물 자원확보와 소재 가공·생산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미국 공급망 분야의 핵심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