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으로 제조업과 서비스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추세인 만큼, 제조업 중심인 우리나라의 수출도 서비스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기초 체력을 키워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정선영 한국은행 조사국 거시분석팀 차장은 27일 열린 ‘한은-대한상공회의소 공동세미나’에서 “미래의 공급망은 중간재 상품에 비해 중간재 서비스의 중요성이 커지고, 제조업의 서비스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반도체, 자동차와 같은 제조업에서 디지털 기술이 부각되자 해당 산업에 빅테크 기업들이 주요 플레이어로 부상하게 된 것이 대표적이다. 반도체 산업에서는 고성능·맞춤형 인공지능(AI)칩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자동차는 자율주행, 커넥티드카 등을 포함한 서비스 플랫폼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2020년 현재 글로벌 IT 산업 부가가치에서 우리나라의 비중은 8%로 중국과 미국 다음으로 크다. 그러나 2018년경부터 중국 주도로 글로벌벨류체인(GVC)이 재편되면서 한국의 글로벌 우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 차장은 반도체 중심의 IT 제조업 공급망에서 AI 수요가 증가하는데 주목했다. 주문형 비메모리 반도체 제조(foundry)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고, 메모리 반도체에서도 고객 맞춤형 제품 생산 비중이 커지고 있다. D램 시장에서 HBM 생산·매출 비중은 2023년 2%·8%에서 2024년에는 5%·21%, 2025년 10%·30% 등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더해 첨단 패키징(packaging)과 같은 후공정 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설계에서 제조에 이르는 단계가 더욱 세분화되고 있다.
정 차장은 “미·중 갈등으로 반도체 공급망이 분리되면서 양국을 중심으로 지역화가 진행되고 있다”며 “한국이 첨단기술 측면에서는 미국과 협력하는 한편, 공급망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제조업에 강점이 있음에도 일부 분야는 대만에 뒤처지는 가운데 소재·장비 분야의 경쟁력을 높여 자급률을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국에도 다양한 정책 노력을 주문했다. 정 차장은 “반도체 초격차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미 국립반도체기술센터(NSTC)와 같은 국제 기술개발(R&D) 협력체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배터리·전기차 산업의 경우 수입선 다변화, 핵심광물 비축을 다방면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ESG 기준에 맞춰 수입국 리스크를 사전에 관리해야 한다”며 “제조업과 서비스업, 내수와 수출의 경계가 흐려지는 상황에서 기술 간 융합을 저해하는 업종별 구분에 근거한 규제를 대폭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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