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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일본 보조금 퍼붓는데 R&D까지 밀려…K반도체 '이중고'

■반도체 R&D '세계 최하위'

美·대만 칩스법 앞세워 전력투구

TSMC도 지난해 7.5조 쏟아붓고

日 민관 합심해 투자 점진적 확대

韓 '투톱' 시설·R&D 사활 걸지만

稅혜택 등 지원 없이 생존 어려워

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공장 전경




사상 최악의 반도체 한파가 불어닥쳤던 지난해 삼성전자는 연구개발(R&D)에 28조 3500억 원을 쏟아부었다. 전체 매출 대비 R&D 비용은 10.9%에 달했다. 반도체(DS) 부문의 적자 행진 속에서도 미래 먹거리에 대해서 만큼은 더 과감하게 투자한 것이다. 삼성전자의 매출 대비 R&D 비용 비중은 2021년 8.1%를 기록한 뒤 매년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강력한 R&D 투자가 앞으로도 가능하다고 자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가장 큰 문제는 매년 불어나는 시설 투자 비용이다. 그동안 반도체 업계는 기술력으로 집적도 한계를 돌파해나가며 성장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반도체 총 공급 용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시설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게 상식으로 통한다. 웨이퍼 한 장에 담아낼 수 있는 저장 용량이 한계에 부딪혀 생산 라인을 증설하고 전체 웨이퍼 투입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의미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한 직원이 설계 모니터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제공=삼성전자·서울경제DB


여기에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같은 선단 메모리의 투자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최근 SK하이닉스가 5세대 HBM3E 12단 양산에 착수해 경쟁자들을 따돌린 게 대표적인 사례다. 한 번 양산 경쟁에 뒤처지면 후속작인 HBM4 8단, 12단에서도 계속 밀릴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이 시설 투자를 늦출 수 없는 이유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시설 투자에 필요한 생산 장비와 인력 비용 등이 모두 급등하고 있어 R&D에까지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하기 힘든 게 반도체 기업들의 공통 고민”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SK하이닉스는 지난해 R&D에 4조 1800억 원을 지출해 전년 대비 투자 비용이 14.6% 줄었다.



문제는 이 사이 정부 보조금 등을 등에 업은 글로벌 기업들이 R&D 지출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TSMC의 경우 지난해 R&D에 1787억 위안(약 7조 5400억 원)을 썼는데 이는 대만 증권거래소 상장사 전체 R&D 비용의 약 25.8%에 해당하는 수치다. 2위를 기록한 미디어텍 역시 806억 위안(약 3조 4000억 원)을 썼다. 인공지능(AI) 칩 시장을 주도하는 엔비디아의 경우 2019~2023년 평균 연간 R&D 지출은 56억 달러(약 7조 4000억 원)였으며 이는 매출 대비 20%에 이른다.

일본 기업들의 R&D 공세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반도체 부활을 외치고 있는 일본의 매출 대비 R&D 비중은 2022년 8.3%에서 2023년 12.0%로 3.7%포인트나 상승했다. 일본이 약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의 막대한 지원이 있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해 최첨단 반도체 기술센터(LSTC)를 설립해 450억 엔(약 4147억 원)을 투자했으며 현재 이 센터는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직접 하기 어려운 고난도·고비용 R&D를 중심으로 지원한다.

일본 정부는 또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재건 임무를 맡은 라피더스에 올해 4월 최대 5900억 엔(약 5조 원)을 추가 지원하면서 현재까지 승인한 보조금만 9200억 엔(약 8조 원)에 달한다. 일본 정부는 2022년부터 2025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0.71%를 반도체 산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일본 정부 외에도 칩스법을 앞세운 미국, 대만판 칩스법을 제정해 집행 중인 대만까지 민관이 합심해 AI 반도체발 패권 경쟁에 전력투구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보조금 경쟁에서 뒤처지면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반도체 경쟁은 국가 대항전으로 기업의 힘만으로는 승리를 확신하기 어렵다”며 “우리나라도 각종 규제에 얽매이지 말고 세제 혜택, 인프라 지원, 보조금 지급 등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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