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유턴기업 지원을 확대했지만 경기 둔화에 제도적 허점이 겹치면서 유턴기업으로 선정된 업체 가운데 절반 이상이 국내 복귀를 하지 않고 있다. 특히 유턴기업의 상당수가 폐업을 이유로 지정이 취소되고 있어 정부의 관리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실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2014~2024년 유턴기업 현황’에 따르면 2014년부터 올해까지 국내 복귀 기업으로 선정돼 세제 혜택을 받은 기업 151곳(선정 취소 제외) 중 55%(83개)가 여전히 조업 준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산업부는 세제 지원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보조금도 상황은 비슷하다. 산업부는 2020년부터 유턴기업에 투자보조금을 4771억 원 지급했는데 보조금을 받은 37개 업체 중 16곳(43%)이 국내에 공장 건설을 하지 않았다. 이들이 받은 보조금은 약 2990억 원으로 국내 투자 계획 규모는 1조 2773억 원이다. 실제로 중국에서 전기전자업을 하던 A사는 2021년 1월 천안 지역 유턴기업으로 선정돼 같은 해 9월 유턴 보조금 131억 4000만 원, 고용창출장려금 5억 4000만 원을 받았지만 이행 기간인 3년이 지나도록 국내 생산시설 준비조차 안 하고 있다.
유턴기업 지정 취소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2014년부터 10년간 유턴기업 지정이 취소된 곳이 31개(17%)에 달한다. 정부는 올해 6~8개 안팎의 유턴기업을 추가로 지정 취소할 예정이다. 김 의원은 “유턴기업 폐업과 투자 미이행은 정부가 유턴기업 실적 채우기에만 급급했다는 것을 방증한다”며 “보조금 규모만 늘릴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사후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리쇼어링 정책의 실질적인 혜택이 크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의 인건비가 주요국 대비 비싸기 때문에 일부 보조금을 받아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자동자 부품만 해도 원가 절감을 위해 인건비가 싼 중국 등에서 부품을 생산해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한 자동차 부품 업계 관계자는 “유턴은 꿈도 못 꾼다”면서 “아무리 보조금을 많이 줘도 돌아오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제 혜택만 해도 우리나라는 일단 투자를 한 다음에 나중에 (법인세) 공제를 해준다”며 “현대자동차 등이 생산기지를 미국에서 짓는 것보다 한국에서 짓는 것이 더 매력적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노동 규제도 국내 복귀를 가로막는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유턴을 결정하고도 막상 국내 노동 상황에 망설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2022년 한국경영자총협회가 해외 진출 기업 306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93.5%는 리쇼어링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해당 기업들이 리쇼어링을 고려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노동 규제(29.4%)였다.
이미 시행 중인 중대재해처벌법이나 야당이 한 차례 발의했던 노란봉투법 등이 기업의 리쇼어링을 막는 대표적인 노동 규제로 언급된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에서) 제대로 일할 사람도 없고 일을 시키는 데 있어서 강력한 규제가 많아서 기업들이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하는 것이 어렵다”며 “근로관계나 노사 관계를 극복할 정도로 혜택이 없는 상황이고 노동시장이 많이 왜곡돼 있다”면서 노동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법인세 같은 세제 부담이 높은 점도 장벽이다. 지난해 민주당의 반대에 막혀 법인세 최고세율을 1%포인트 인하하는 데 그치면서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여전히 24%로 여전히 높은 편이다. 명목 법인세율은 26.5%로 전 세계 141개국 중 44번째인데 미국과 프랑스, 이스라엘 등보다 높다.
수도권 입지 규제도 한몫한다. 유턴 보조금의 경우 수도권에 설비투자를 하면 보조금 지원 비율이 11%에 그친다. 반면 수도권 이외의 지방은 지원 비율이 24%로 급격히 올라가고 산업위기대응지역의 경우 44%로 매우 높은 편이다. 수도권에 설비투자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비수도권에 비해 보조금 지원율이 매우 낮기 때문에 기업들의 수도권 리턴 유인을 크게 낮추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는 “지역 공동화 현상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기업들은 수도권을 벗어나서 잘 안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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