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투자용 국채가 긴 만기와 금리 하락에 발목 잡혀 판매 부진을 겪자 정부가 청약 미달 물량을 12월에 추가로 판매하는 방안을 살피고 나섰다. 정부는 연말까지도 올해 배정된 1조 원어치 물량이 다 소진되지 않을 경우 남은 국채를 개인이 아닌 기관투자가들에게 넘기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
1일 금융투자 업계와 관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최근 개인 투자용 국채 청약 신청액이 발행액에 잇따라 못 미치자 예정에 없던 12월 판매 카드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개인 투자용 국채는 기재부가 ‘국민의 노후 대비를 위한 자산 형성 지원’이라는 정책 목표 아래 10년물과 20년물을 1~11월 연 11회 발행하기로 설계한 저축성 채권이다. 청약 원년인 올해에는 독점 판매사인 미래에셋증권(006800)을 통해 6~11월 총 1조 원어치를 팔아야 한다.
업계에서는 기재부가 이달 청약 결과를 지켜본 뒤 다음 달 물량을 정하는 과정에서 12월 판매 여부를 확정할 것으로 관측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이달이나 다음 달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 확실시되는 만큼 투자 심리가 더 얼어붙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기재부 고시인 ‘개인 투자용 국채의 발행 및 상환 등에 관한 규정’ 제17조는 기재부 장관이 재정 자금의 사정, 시장 여건 등을 고려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발행일 등을 변경할 수 있게 한다.
정부는 나아가 개인 판매액으로 1조 원을 채우는 데 실패하면 남은 물량을 아예 발행하지 않거나 기관에 파는 방법까지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이 중에서도 최근 정부 전반의 세수 부족 상황을 감안해 미달 물량을 기관에 판매할 가능성을 더 높게 점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바는 없고 발행이 계획된 11월까지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 투자용 국채는 첫 달인 6월부터 20년물 청약에 미달 사태가 나면서 판매에 비상이 걸렸다. 청약 경쟁률은 이후에도 매달 급속도로 떨어졌다. 20년물은 기재부가 한 달 만에 발행액을 1000억 원에서 500억 원으로 줄였음에도 7월 청약에서 300억 원도 채 모으지 못했다. 9월에는 전체 금액을 2000억 원에서 1500억 원으로 축소 발행했는데도 10년물조차 목표 액수를 채우지 못했다. 전체 청약 신청 규모가 6월(4261억 원)의 10.7%(455억 원)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6~7월에는 20년물에서 구멍이 난 물량을 10년물로 겨우 메웠으나 8월과 9월에는 청약 총액 자체가 모자라 103억 원, 1045억 원어치를 각각 발행하지 못했다. 금융시장 변동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상황에서 상품 투자 기간이 너무 긴 데다 만기까지 보유해야만 가산금리, 연 복리, 분리과세 혜택을 주는 점이 걸림돌이 됐다. 중도 환매도 매입 1년 뒤부터 가능하다.
기재부는 이달 11~15일 청약 예정 발행액도 기존 미달 물량을 반영하지 않은 채 1500억 원으로만 정했다. 금리 인하기를 맞는 다음 달에만 8~9월 미발행액 1148억 원을 포함해 총 2148억 원어치의 국채를 팔아야 할 상황이다. 만약 10월 청약에서도 미달이 발생한다면 11월 발행액은 3000억 원에 육박할 수도 있다.
기재부는 기존에 대안으로 검토했던 5년 만기 국채 도입안은 일단 보류했다. ‘장기 투자 활성화’라는 상품 취지와 멀어질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자칫 개인 투자용 국채가 서민 상품이 아니라 고액 자산가용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는 점도 감안했다. 5년물이 10년물·20년물과 동일한 세제 혜택을 받게 하려면 내년 이후 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도 개정해야 한다. 개인 투자용 국채 규정은 상품 만기를 원칙적으로 10년과 20년으로 하되 재정 자금 수요, 시장 상황 등에 따라 다른 만기로도 발행할 수는 있게 한다.
업계 일각에서는 금리가 단계적으로 낮아질 가능성이 높은 시장 여건을 고려해 정부가 내년부터 전체 개인 투자용 국채 발행 물량을 1조 원 미만으로 줄여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발행액이 많은 상태에서 기재부가 이달 물량을 1500억 원어치만 배치했기에 12월 발행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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