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고위험 금융투자상품 판매제도 개선 방안’ 발표에 앞서 소비자 의견을 듣는 공청회를 열기로 했다. 연초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 때 “늦지 않게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수개월째 결론을 내지 못하다 느닷없이 “여론을 듣겠다”는 것이다. 그만큼 불완전판매 근절과 소비자 선택권을 두고 의견 대립이 치열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금융 당국의 책임을 소비자에게 미루는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르면 11월께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제도 개선 방안’ 관련 공청회를 열고 12월 전후로 최종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정감사가 끝난 후 공청회를 열 계획”이라며 “소비자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듣고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은 올 3월 홍콩 H지수 ELS 손실 사태 수습을 위해 현장 검사 결과와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하면서 제도 개선 계획을 공식화했다. 무려 7개월 동안 논의가 진행되면서 다양한 방안이 제시됐다. 예·적금과 투자 상품 판매 창구 분리, 판매 직원 자격 요건 강화, 투자자 연령 제한 등이 그것이다. 내부적으로는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금융 당국이 공청회를 열기로 한 것은 아직도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쪽에서는 은행 판매 금지 같은 극단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반면 소비자 선택권을 중요시하는 쪽에서는 최소한의 장치 정도만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자 장사’ 손가락질 속에 비이자 사업에서 ELS 덕을 크게 봤던 은행들은 현실적인 규제 강화 후 판매 재개를 요구하고 있다. 다양한 해외 선진국 사례들도 논의에 포함됐을 뿐만 아니라 은행·증권 업권 간 형평성, 고객의 금융 지식 수준 고려 등 거의 모든 요소들이 검토 대상에 올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안에는 제도 개선안을 발표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금융 당국이 꺼내든 카드는 공청회다. 물론 주요 정책 발표 전 공청회를 여는 것이 아주 특별한 일은 아니다. 이해관계자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는 데다 제도 개선의 목적이 ‘소비자 보호’인 만큼 소비자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도 꼭 필요한 일이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금융 당국이 명분 만들기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온다. 소비자 보호의 빈틈을 메우면서도 금융기관 선진화와 글로벌 흐름에 역행하지 않는 방안들이 이미 나와 있는데도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것이다. 개선안 발표 시점이 ELS 판매 은행의 자율배상이 상당 부분 진행된 후로 미뤄진 점도 당국이 얼마나 여론을 의식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쯤 되니 일각에서는 “금융정책의 책임을 소비자에게 미루려는 것”이라는 지적마저 나올 정도다.
당국의 고민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름 그대로 ‘고난도’의 금융상품 판매제도 개선에 소비자의 의견이 얼마나 큰 정책 효과를 낼지는 의문이다. 소비자 의견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가뜩이나 복잡하고 어려운 금융 분야에서 ‘금융시장 발전’과 ‘소비자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내놔야 하는 곳은 소비자가 아니라 전문가 집단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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