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주도하는 국제금융기구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부총재직 국제 공모에서 한국인 후보가 낙마한 것으로 파악됐다. AIIB뿐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주요 국제금융 기구에서도 부총재와 사무총장 이상 고위직이 전무해 국제금융 시장에서 한국의 발언권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출신 A 씨는 최근 AIIB 부총재직 공모 과정에서 탈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는 금융위 고위직 출신으로 기획재정부 간부를 지낸 B 씨와 경합한 끝에 한국 측 AIIB 부총재 최종 후보로 결정됐다.
한국은 2016년 AIIB가 출범하자마자 부총재직을 배출한 바 있다. 당시 부총재직 중 하나인 최고리스크관리책임자(CRO) 자리에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이 임명됐다. 한국이 AIIB에 다섯 번째로 많은 지분(3.86%)을 출자한 결과다. 하지만 홍 전 회장이 대우조선해양 부실과 관련한 문제로 부총재 임명 넉 달 만에 돌연 휴직계를 내고 잠적하면서 사안이 꼬였다. 이후 홍 전 부총재가 사퇴하면서 한국은 8년간 AIIB 부총재 자리를 얻지 못했다.
정부는 부총재 5명 중 3명의 임기가 만료되는 올 하반기를 AIIB 부총재단에 재진출할 기회로 보고 올해 초부터 후보자 선정 작업에 착수해왔다. 정부 관계자는 “채용 절차가 진행 중이고 아직 최종 발표된 것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관가에서는 한국의 AIIB 부총재단 재진입은 물 건너갔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홍 전 회장이 CRO를 맡았던 2016년 이후 사드 보복과 미중 무역 분쟁으로 한중 관계가 악화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처음부터 한국의 AIIB 고위직 진출이 어려웠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한국의 경제 규모에 비해 국제금융 기구 고위직 진출이 원활하지 않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재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IMF·세계은행그룹(WBG)·아시아개발은행(ADB)을 비롯한 주요 국제금융 기구 8곳 중 한국인이 고위직으로 있는 곳은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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