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3분기 잠정실적 공개와 함께 8단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인 HBM3E 공급이 지연되고 있음을 공식화했다. 세계 인공지능(AI) 칩 시장에서 독보적인 선두를 달리고 있는 엔비디아의 퀄(승인) 테스트 완료를 3분기 안에 해내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HBM3E 시대에서도 주도권을 잡지 못한 삼성이 내년 출시할 6세대 HBM(HBM4) 개발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8일 삼성전자는 잠정실적 발표 이후 별도로 낸 설명 자료를 통해 “HBM3E의 경우 예상 대비 주요 고객사향(向) 사업화가 지연됐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자사의 HBM 사업이 어려움에 처했다는 입장을 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전자가 설명 자료에서 언급한 ‘주요 고객사’는 엔비디아가 유력하다. 현재 엔비디아는 삼성의 8단 HBM3E를 최첨단 AI용 그래픽처리장치(GPU)에 적용하기 위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3분기 안에 이 테스트가 완료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발열·내구성 등 다양한 이유들로 통과가 미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의 HBM3E 퀄 지연은 경쟁사들과의 기술 격차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HBM 분야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SK하이닉스는 이미 연초부터 엔비디아에 공급할 HBM3E 제품을 양산했고 지난달부터 4단을 더 높인 12단 HBM3E까지 생산에 들어갔다. D램 시장 3위인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도 연초 엔비디아에 8단 HBM3E를 납품하는 데 성공한 뒤 최근 12단 시제품을 엔비디아에 출하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내년 양산이 목표인 HBM4에 더 힘을 쏟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유행했던 4세대 HBM(HBM3)에 이어 HBM3E 시대에서까지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주면서 내년 양산할 제품에 승부수를 걸어야 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HBM3E에서도 삼성전자가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기는 힘들 것”이라며 “반전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2026년 후반부터 생산되는 하이브리드 본딩 공정 중심의 HBM4 시장에서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