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스타 안젤리나 졸리에서 발견된 BRCA 유전자는 유전성 유방암과 난소암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BRCA1·2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여성은 평생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60~80%, 난소암이 발생할 확률이 4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니가 난소암, 이모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등 가족력이 많았던 졸리는 2013년 유전자검사에서 BRCA1 유전자가 변이된 것으로 판명되자 예방 조치로 양쪽 유방을 3개월에 걸쳐 절제했다. 2015년에는 난소와 나팔관까지 제거해 대중을 놀라게 했다. 그런데 BRCA1·2 유전자 돌연변이가 없어도 한쪽에 유방암이 생기면 다른 쪽에도 유방암이 생길 위험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서울대병원 유방내분비외과 문형곤·강은혜 교수는 2005년부터 2018년까지 서울대병원에서 치료 받은 유방암 환자 1만3107명의 데이터를 활용해 전체 생존율과 반대편 유방암 발생 위험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은 연관성이 확인됐다고 9일 밝혔다.
유방암은 국내에서 가장 흔한 여성 암 중 하나다. 작년 말 발표된 국가암등록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유방암 환자는 2만 8720명으로 2012년 1만 6803명보다 71% 증가했다. 특히 젊은 연령층의 발병률이 높아지고 있으며 가족력, 유전적 요인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BRCA1·2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DNA 복구 기능에 문제가 생겨 암 발생 위험이 급격히 높아진다. 한쪽에 유방암이 발생한 후 남은 한쪽에 유방암이 재발할 위험도 크다는 사실이 선행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그러나 해당 변이가 없는 고위험군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던 실정이다.
연구팀은 BRCA1·2 유전자 변이 검사 기준에 따라 환자들을 저위험군과 고위험군으로 나눴다. 유전적 요인이 적거나 BRCA1·2 돌연변이 위험이 낮으면 저위험군, 유방암 가족력이 있거나 진단 연령, 삼중음성 유방암 등 유전성 유방암의 요인이 많으면 고위험군으로 분류했다. 고위험군은 BRCA1·2 유전자 변이 유무에 따라 BRCA1·2 변이 환자, BRCA1·2 변이가 없는 환자, 유전자 검사를 받지 않은 환자의 세 그룹으로 세분화해 반대편 유방암(CBC·Contralateral Breast Cancer) 발생 위험을 살폈다.
그 결과 BRCA1·2 변이가 있는 환자는 저위험군보다 반대편 유방암 발생 위험이 7.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BRCA1·2 변이가 없는 고위험 환자도 저위험군보다 반대편 유방암 발생 위험이 2.77배나 더 높았다. 10년 누적 반대편 유방암 발생 확률을 분석했더니 BRCA1 돌연변이 환자는 9.9%, BRCA2 돌연변이 환자는 7.2%였다. 북미·유럽 지역에서 보고된 반대편 유방암 발생 확률 19.5~33.5%보다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치다.
이번 연구는 대규모 한국인 유방암 환자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행됐다는 점에서 임상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북미·유럽 등과 달리 국내에서는 BRCA1·2 변이가 없는 고위험 환자의 반대편 유방암 발생 위험이 일반 환자보다 높을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결론이다.
강 교수는 “BRCA1·2 변이가 없는 유방암 환자들도 일반 환자들보다 반대편 유방암 발생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가족력이 있는 유방암 환자는 지속적인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문 교수는 “BRCA1·2 유전자 변이 환자의 반대편 유방암 발생률은 10%로 서구 환자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다”며 “이런 차이를 반영한 맞춤형 치료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유방암 연구(Breast Cancer Research)’ 최신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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