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일본에서 10년 만에 처음으로 기업 도산 건수가 5000건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원가 인상분을 판매 가격에 전가하지 못한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기업 활동을 접는 곳들이 급증한 것으로 해석된다.
9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도쿄상공리서치는 2024년도 4~9월(회계연도 상반기) 전국 도산 건수(부채액 1000만 엔 이상 기준)가 5095건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2023년 상반기보다 18%나 늘었다. 반기 기준으로 5000건을 웃돈 것은 2014년 상반기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다. 올해 기업 도산은 금융·보험을 제외한 모든 업종에서 지난해보다 늘었고 지역별로도 9개 광역 지구 모두 증가세를 보였다.
기업 도산이 급증한 배경으로는 급격한 물가 상승이 꼽힌다. 실제 기업 정보 업체 ‘제국 데이터뱅크’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물가 상승으로 인한 도산은 472건으로 반기 기준 최대치를 찍었다. 원자재 가격을 비롯해 인건비 등 생산 비용은 오르는데 그만큼 판매 가격은 인상하지 못하자 기업 부담이 늘어난 것이다.
특히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일수록 충격이 더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 2월부터 7월까지 중소기업 가운데 ‘가격전가율’이 높아진 곳은 약 30%에 그쳤다. 이는 비용 상승분을 얼마나 판매가에 전가할 수 있었는지를 나타내는 수치인데 중소기업들이 가격 인상을 단행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 신용금고 이사장은 “중소기업은 원재료비와 연료비의 상승에 더해 인재 확보를 위해 임금 인상을 실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면서 “하지만 비용 증가를 판매 가격에 전가하지 못하고 적자에 빠진 기업이 많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정책자금 지원이 끝난 것도 기업 도산이 늘어난 원인으로 지목된다. 닛케이는 “정부의 코로나19 자금 지원책이었던 실질 무이자·무담보융자의 상환이 본격화된 것도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앞으로 기업 도산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금리 인상기에 접어들면서 기업들의 비용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올 3월 8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 탈피를 선언한 일본은행(BOJ)은 향후 기준금리의 추가 인상을 예고한 상태다. 도쿄상공리서치의 사카타 요시히로는 “매달 도산 건수는 증감을 반복할 수 있지만 증가 추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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