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증시에 투자한 개인투자자의 수익률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올 3분기까지 한국 증시에 투자한 개인은 10% 가까운 손실을 본 반면 미국 증시에 투자한 개미는 10%의 이익을 올린 것으로 집계됐기 때문이다.
정부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드라이브에도 불구하고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등 정책 불확실성, 미국 경제·유가 등 외생변수에 취약한 천수답 증시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최근에는 경기 부양책으로 신흥국 투자 자금이 중국으로 쏠릴 가능성마저 제기돼 한국 증시의 소외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9일 서울경제신문이 NH투자증권에 의뢰해 올 9월까지 국내 증시에 투자한 약 297만 명, 미국 증시에 투자한 67만 명의 계좌를 분석해보니 한국 증시에서는 -9.45%의 손실을, 미국 증시에서는 10.94%의 수익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코스피·코스닥지수의 수익률은 처참하다. 코스피는 지난해 12월 28일 기준 2655.28에서 지난달 말 기준 2593.27로 이 기간 2.34% 하락했다. 나스닥지수를 표방한 코스닥지수는 같은 기간 866.57에서 11.85% 감소한 763.88로 급락했다. 코스닥지수는 밸류업 국면에서도 소외된 만큼 코스피지수보다 더욱 크게 하락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미국 대표 지수는 일제히 10% 이상 급등했다.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지난해 말 대비 12.31% 증가했으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20.81%, 나스닥지수는 21.17% 상승했다.
특히 블랙 먼데이(검은 월요일·5일)가 있던 8월 한 달간 수익률도 국내 투자자는 -4.14%, 미국은 -1.03%였다. 엔캐리 트레이드(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다른 투자자산에 투자) 청산 우려로 증시가 급락했는데 기초 체력이 약한 한국 증시가 선진국 증시 대비 더 큰 폭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시장 안팎에서는 삼성전자(005930)의 인공지능(AI) 밸류체인(가치사슬) 소외, 불확실성을 키운 금투세 유예 등을 증시 부진의 주요인으로 꼽는다. AI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빅테크의 밸류체인에 올라탄 국내 기업은 엔비디아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하는 SK하이닉스(000660)가 사실상 유일하다. 삼성전자의 엔비디아향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인 HBM3E 납품도 기대됐지만 계속해서 지연되는 실정이다. 시장 기대치를 하회하는 3분기 잠정 실적을 공시하면서 삼성전자를 향한 증권가의 회의도 더 커지고 있다. 대장주(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주요국 대비 큰 취약한 증시 구조로 삼성전자의 하락은 곧 지수 하락으로 연결된다. 업계 관계자는 “AI 산업이 커지면서 메모리의 위상도 강화되고 있는데 삼성전자는 되레 이 기회를 날리고 있다”며 “이게 한국 증시 약세의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금투세도 변수다. 이미 고액 자산가들은 국내 증시를 떠나 부동산이나 해외 증시로 자산을 대거 이동하는 상황인데 올 4분기 들어서도 아직 시행 유예나 폐지가 명확하지 않은 금투세가 자금 이탈을 더 부추기는 양상이다.
실제 증시 대기성 자금인 투자자 예탁금은 지난달 51조 원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데 예탁금 규모가 가장 많았던 7월 대비 약 6조 원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증시가 막판 스퍼트를 내는 것도 투자자 입장에서는 허탈감을 낳게 한다. 밸류업에도 꿈쩍하지 않는 한국 증시와는 확연히 대비되는 탓이다. 증권가에서는 중국 내수 경제 활성화가 한국 기업의 수출 증가로 이어지는 소위 낙수 효과보다는 수급 쏠림 현상으로 한국 증시에 악재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한 대형 증권사 임원은 “외국인투자가가 연일 한국 주식을 팔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경기 부양책을 내놓아 한국 증시에 대한 투심이 더 악화될 수 있다”며 “(금투세 시행 유예 등의 결정은) 이미 실기했지만 그래도 불확실한 세금 문제를 빨리 풀어줘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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