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 공개매수 가격을 더이상 높이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규모를 한껏 키워가던 양측 쩐의 전쟁이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업계에서는 조만간 법원에서 열리는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 관련 가처분 판결도 양측의 운명을 가를 또다른 승부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1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주당 83만 원의 자사주 공개매수 제시가를 더 높일지를 두고 여전히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금융감독원이 이번 공개매수 관련 조사에 착수한데다 MBK가 전날 가격 인상이 없다고 못박으면서 아직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시장이 최 회장 측의 가격 인상 불씨가 남아 있다고 보는 것은 MBK의 공개매수가 오는 14일 종료돼 잔여 지분들이 MBK 쪽으로 먼저 몰려갈 가능성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고려아연 측의 자사주 대항 공개매수는 오는 23일 종료된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다음 쟁점인 법원의 가처분 판결에 모아지고 있다. MBK와 고려아연도 각각 베이커맥킨지코리아, 김앤장 등 로펌과 함께 오는 18일 법원에서 열릴 자사주 매입 금지 가처분 사건 심리 준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판결을 통해 고려아연이 진행중인 자사주 공개매수가 완벽히 법적 리스크를 벗어나 순항하게 될지, 혹은 제동이 걸리게 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의 공개매수가 오는 23일 끝난다는 점에서 법원은 이보다 앞선 21~22일 중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앞서 MBK가 지난달 13일 제기한 고려아연의 자사주 취득 금지 가처분 신청은 법원에 의해 완전 기각된 바 있다. 당시 법원은 고려아연이 영풍·MBK 측과 특별관계를 해소하고 자사주 매수를 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 결정에 힘입은 고려아연은 그날 즉시 이사회를 열고 자사주 매입을 결의하면서 영풍·MBK에 맞설 3조 원 규모의 대항 공개매수를 시작했다.
다만 상법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2차 가처분 판결은 명확히 판세가 기울어 있던 1차 때와는 분위기가 다소 다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2차 때 쟁점은 고려아연이 만들어 둔 약 6조 원 규모의 임의적립금을 배당가능이익, 즉 자사주 취득 한도로 볼 수 있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법원이 이 임의적립금을 배당가능이익으로 인정해줘야 고려아연이 진행중인 자사주 공개매수가 완전히 적법성을 인정 받게 된다고 볼 수 있다.
법원은 1차 판단 때 자사주 매입 자체에 대한 결정을 했을 뿐 배당가능이익이 얼마인지에 대한 부분에 대해 판단을 할 수 없었던 상황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 관련 이사회가 열리기 전이었고, 이에 따라 회사가 어떤 명목의 돈을 자사주 매입에 쓸 지를 알 수 없었다.
일단 MBK 측은 고려아연의 배당가능이익은 586억 원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편다. 고려아연은 올 초 정기주주총회에서 2693억 원만 중간배당 재원으로 남겨두고 이중 상당수는 이미 배당을 완료했다. 그러면서 나머지 약 6조 원은 해외투자적립금 및 자원사업투자적립금 등 사용 목적을 명시해뒀다. 만약 이 적립금을 다시 배당가능이익으로 돌리려면 주총을 열어 승인을 내야 하는데, 이를 이사회가 단독으로 결정해 뒤바꾸는 것은 상법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천준범 와이즈포레스트 대표(변호사)는 "법원은 형식적인 부분과 실질적인 부분을 나눠 두 단계로 판단하게 될 것"이라며 "형식상 임의적립금을 배당가능이익으로 판단한다 하더라도 실제 2조7000억 원 규모의 엄청난 금액을 경영권 방어용으로 쓴다는 게 회사나 주주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보게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자사주 공개매수가 최 회장 등 현 이사회의 지위 보전 등 목적이 크고 이에 반해 다른 주주들의 이익과는 배치되는 부분이 있는지를 따져볼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번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는 국내에 유례가 없는 상당한 규모의 자금이 투입되는데, 명백히 회사 돈으로 이사회 자리를 보전하는 것이 정당화되려면 회사와 총주주에게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점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상법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고려아연의 임의적립금 사용처를 주총에서 승인냈기 때문에 이를 용도 변경하려면 이사회가 아닌 주총에서 다시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분야 전문가인 이철송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저서에서 "용도가 특정돼 있는 임의준비금을 사용해 배당하려 할 경우 먼저 용도를 변경한 후에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주총 결의에 의해 적립된 경우 주총 결의에 의해 용도를 변경해야 한다"고 썼다.
반면 고려아연 측은 이번 자사주 공개매수가 법원의 지난 1차 판결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며 절차대로 완료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고려아연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상법과 금융감독당국 규정, 대법원 판례, 저명한 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임의적립금도 배당가능이익에 포함되므로 상법상 자사주 취득한도 산정시에는 임의적립금을 차감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일치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근 최준선 성균관대 로스쿨 명예교수가 "법률과 판결례를 보면, 현재 상법·자본시장법이 기업에 허용하는 단 하나의 적대적 기업매수에 대한 방어수단은 자사주 취득이며 공개매수기간 중엔 자기주식을 취득해선 안 된다는 특별한 제한은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충희 기자 mids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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