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 탓에 올여름은 유난히 덥고 길었다. 지난달만 해도 ‘가을 폭염’에 전력 수요가 9월 기준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올해 겨울도 초강력 한파가 예고돼 있다. 이상기후가 일상화하면서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값싼 전기와 가스 가격에 국민들의 씀씀이는 여전히 크다. 서울경제신문은 4회에 걸쳐 국내 에너지 소비를 진단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에너지 소비국인 동시에 낭비국이다. 전기와 가스·석유·석탄·신재생 등을 포함한 한국의 지난해 연간 에너지 소비량은 2억 800만 toe(석유환산톤)에 달한다. 해외 의존도가 절대적인 석유의 비중이 46.6%다. 국가 간 비교가 가능한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월드 에너지 밸런스 2024’를 보면 한국의 2022년 기준 에너지 소비량은 1억 8100만 toe로 세계 10위다. 이는 전 세계 평균 에너지 소비량(6000만 toe)의 3배에 달한다.
문제는 에너지 요금이 상대적으로 싸다 보니 과소비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페트롤프라이스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의 주택용 전기요금은 1㎾h당 172.4원으로 148국 중 77위였다. 독일(532.3원)과 일본(284.4원), 미국(213.2원) 등 해외 주요국 대부분은 우리나라보다 전기요금이 높았다.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는 캐나다(81위), 헝가리(91위), 멕시코(92위), 튀르키예(122위)만 주택용 전기요금이 한국보다 낮았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전기를 비롯한 한국의 에너지 요금이 상대적으로 싼 것은 명확한 사실”이라며 “서민과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부담일 수 있지만 이제는 정상화할 때가 됐다. 지금은 과소비를 부추기는 측면이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의 에너지 소비는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00년 대비 2021년 OECD 회원국의 에너지 소비는 0.06%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한국은 연평균 1.72% 늘어났다. 미국(-0.02%)과 독일(-0.14%), 일본(-1.08%) 등 주요국의 에너지 소비는 되레 줄기도 했다.
특히 한국은 이용 효율이 하위권이다. 2022년 기준 에너지 원단위로 측정한 한국(0.125)의 에너지 효율은 독일(0.064)의 절반 수준이다. 에너지 원단위는 1차 에너지 공급량을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값으로 크기가 작을수록 효율이 높음을 의미한다. 한국은 일본(0.074)과 미국(0.102)은 물론 OECD 평균(0.085)에도 크게 못 미친다. 그만큼 에너지를 많이 쓰고 동시에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전경영연구원은 “한국의 에너지 원단위는 감소 추세지만 선진국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며 “에너지 효율 개선 역시 상대적으로 더디다”고 설명했다. 한 에너지 공기업 관계자는 “아무래도 주요 국가에 비해 에너지 낭비 요인이 많은 편”이라며 “국민들을 대상으로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벌여도 최근에는 예전 같은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상기후가 확산하고 있고 한국의 에너지 해외 의존도가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에너지 다이어트’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의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올해 상반기(1~6월) 기준 93.6%로 에너지 안보에 취약하다. 에너지 공급량 대비 국내 생산 비중을 보여주는 에너지 자립도 역시 0.20으로 OECD 회원국 중 룩셈부르크와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낮다. 에너지를 생산해 자체적으로 쓰고 남는 경우 수출을 하므로 에너지 수출국은 에너지 자립도가 1보다 크고 에너지 수입국은 1보다 작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일본의 자립도가 2008년 0.07에서 2022년 0.13으로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한국의 에너지 자립도 개선(2008년 0.18→2022년 0.20)은 미미하다”고 평가했다.
이를 고려하면 에너지 소비 구조를 혁신하고 적극적인 에너지 수요 관리와 효율 향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원가에도 못 미치는 수준의 전기·가스 요금 등의 현실화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박용덕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에너지 효율 향상을 통한 에너지 소비 감소는 경제성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감축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