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버코리아 은혜를 고려아연으로 갚았다”
영풍·MBK파트너스와 경영권 분쟁 중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백기사로 베인캐피탈이 등장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베인캐피탈은 최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고려아연 지분 5%를 담보로 잡긴 했지만, 이정우 베인캐피탈 대표와 고려아연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이승호 부사장 사이의 인연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1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주당 89만원에 발행주식 최대 17.5%를 대상으로 자사주 취득 공개매수를 이달 23일까지 진행한다. 이와 함께 베인캐피탈도 4600억 원을 투입해 같은 가격에 최대 2.5% 확보를 목표로 대항공개매수에 나섰다.
시장에서는 베인캐피탈이 고려아연과 손 잡은 이유로 이정우 대표와 이승호 부사장을 주목했다. 이들은 과거 모건스탠리에서 근무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대표는 맥킨지, 크레딧스위스를 거쳐 모건스탠리PE(MSPE) 상무 시절인 지난 2015년 베인캐피탈 대표로 영입됐다. 이 부사장은 스탠다드차타트(SC)를 거쳐 2004년부터 약 10년간 모건스탠리 기업금융 부문에서 활약했다. 이후 노무라금융투자에서 근무한 뒤 고려아연에 자리를 잡았다.
베인캐피탈은 지난 2016년 6월 화장품 브랜드 ‘AHC’로 유명한 카버코리아를 골드만삭스와 함께 3000억 원에 인수했다. 그런데 불과 1년 3개월 만에 1조8750억 원에 유니레버에 팔아 대박을 터뜨렸다. 이는 인수 직후 베인앤컴퍼니 컨설팅을 받은 결과 ‘단기간 기업가치를 끌어올려 팔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메가 히트 딜이었지만 실제 매각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당장 적절한 원매자를 찾기도 힘들었다. 이정우 당시 베인캐피탈 한국총괄은 매각 시점을 미뤄야겠다는 생각까지 가질 정도였다. 이때 등장한 구원자가 이승호 부사장이다. 당시 노무라금융투자 상무였던 이 부사장은 폭넓은 네트워크를 활용해 글로벌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를 카버코리아 인수자로 데려와 거래를 성사시켰다. 유니레버가 "고점에 샀다"는 시장 반응은 덤이었다.
시간이 흘러 지난달 MBK의 공개매수가 시작되자 이 부사장은 우호군을 확보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본인은 직접 영풍정밀(036560) 대항공개매수를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제리코파트너스의 대표에도 올랐다. 8년 전 이 부사장이 이 대표를 도왔던 것처럼 이번에는 이 대표가 이 부사장의 지원군이 됐다.
다만 공짜는 없다. 공개매수신고서에 따르면 최윤범 회장 측은 베인캐피탈과 주주 간 계약을 체결하고 일가가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 5%에 질권을 설정했다. 일정 수익률을 보장 받는 장치와 함께 최악의 상황이 되면 최 회장의 경영권도 뺏길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내용을 보면 최 회장 일가와 베인캐피탈은 의결권을 공동으로 행사하고, 계약에서 정한 예외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한 고려아연 주식을 매각하지 않기로 했다. 베인캐피탈은 예외적 사유가 발생할 경우 기존 주주들이 보유하고 있는 고려아연 주식에 대해 매각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됐다.
최 회장 일가가 주요계약체결한 주식은 기존에 1.41%(29만1188주)에서 6.41%(132만6352주)로 늘어났다. 최 회장은 ‘주식등의대량보유상황보고서’ 공시를 통해 베인캐피탈이 설립한 SPC 트로이카 드라이브 인베스트먼트와의 주주간 계약서 체결에 따라 변동사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대상 지분은 최윤범 회장을 비롯해 작은아버지 등 가족 보유 물량이다. 모친인 유중근 영풍정밀 대표, 최창영 명예회장과 부인인 김록희씨, 그의 아들인 최내현 회장과 최정일씨, 최창근 명예회장과 부인 이신영씨, 그의 아들인 최민석 전무, 최창규 영풍정밀 회장, 최정운 전 서울대 교수 등이다. 최윤범 회장의 아버지인 최창걸 명예회장의 동생들과 가족들 지분이 모두 담보로 잡힌 것이다. 이들의 지분을 모두 합하면 5%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