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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채권 자경단





월가의 유명 경제학자인 에드워드 야데니가 1984년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나 정부의 재정정책이 채권 가격을 불안정하게 만들 때 이에 항의하는 뜻에서 채권을 대거 매도해 가격을 폭락시키는 투자자들을 일컫는다. 채권 자경단은 실제 특정 세력이라기보다 과도한 적자 재정으로 국채 발행 증가와 채권 등급 하락이 우려되거나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운용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투매가 쏟아지는 채권시장의 기능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993년 10월부터 약 1년 동안 미국의 10년물 국채 금리가 5.2%에서 8.0%로 급등했다. ‘채권 대학살’로 불리는 이 사건은 당시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오랫동안 유지해왔던 저금리 시대를 끝내고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촉발됐다. 국채 투매로 인해 국채 금리가 뛰면 정부는 더 높은 이자 비용을 내고 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어 궁지에 몰린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정치 고문인 제임스 카빌은 당시 “나는 환생할 수 있다면 대통령이나 교황, 혹은 4할대 야구 타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채권시장이 되고 싶다. 모두를 겁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채권시장 내 큰손 투자자들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채권 자경단은 채권시장이 불안정할 때 회자된다. 2010년대 유럽의 재정 위기, 2022년 영국의 재정 적자 우려로 국채 금리가 급등한 시점이 대표적이다. 야데니는 34조 달러 규모에 이르는 미 연방정부의 부채가 계속 증가하는 한 채권 자경단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이 최근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에 성공하면서 최대 90조 원의 글로벌 자금이 국내 채권시장에 유입될 수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의 입김이 더 세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 금융시장에서 채권 자경단이 나서는 일이 없게 하려면 신뢰도 높은 재정·통화정책으로 과도한 재정 적자나 물가 불안이 없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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