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설비투자나 고용 확대로 받은 법인세 세액공제액 가운데 농어촌특별세로 나간 금액이 코로나19 이후 최근 3년간 2조 원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체 입장에서는 농특세 규모만큼 정부로부터 받은 세액공제 혜택이 줄어들어 실제로는 기업이 농특세를 부담하는 구조다. 이대로라면 기업의 투자 촉진 효과가 반감돼 내수 회복 시점이 더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법인세를 신고한 기업들이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감면받은 법인세액 중 농특세로 신고한 액수가 8251억 원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전인 2019년 3644억 원이었던 농특세 신고액은 △2020년 3420억 원 △2021년 5642억 원 △2022년 7803억 원 등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신고액은 3년 전인 2020년과 비교하면 2.4배나 많다.
현행 세법은 조특법에 따라 조세 감면을 받는 경우 감면 세액의 20%를 농특세로 납부하도록 돼 있다. 영농조합법인 같은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조세 감면액 중 20%는 농특세로 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계에서는 첨단산업에 대한 실질적 혜택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공제액의 일부를 농특세로 납부해야 돼 법령상 공제율에 비해 세액공제 효과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반도체·2차전지 같은 국가전략기술에 적용되는 시설투자세액공제율은 15%(대기업 기준)인데 이 중 20%를 농특세로 내면 실질적인 공제율은 12%로 떨어진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법인세 혜택을 줬다가 농특세 명목으로 일부를 다시 뺏어가는 꼴”이라며 “첨단산업 설비투자분에 제공하는 감세 혜택에 대해서는 농특세 면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은 반도체를 비롯한 국가전략기술의 설비·시설투자 및 연구개발(R&D)에 세계 최고 수준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합니다.”
정부는 직접 보조금이 없어 한국의 첨단산업 지원책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올 때마다 국가전략기술이나 신성장·원천기술 세액공제율을 근거로 반박했다. 실제로 반도체·2차전지와 같은 국가전략기술 R&D에 적용되는 세액공제율은 30~50%로 대만(25%)이나 미국(20%)에 비해 높다. 국가전략기술 관련 설비투자의 경우 15~25%로 미국(25%)보다 낮지만 대만(5%)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설비·시설투자와 같은 웬만한 조세 감면분 중 20%는 농어촌특별세로 빼야 돼 실질적인 세제 혜택이 이보다 저조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R&D 비용과 마찬가지로 첨단산업의 설비·시설투자와 관련한 세액공제분에 대해서도 농특세를 면제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다는 지적이 나온다.
천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업들이 조특세법에 따라 감면받은 명목상 법인세액(신고액 기준)은 4조 2714억 원에 달한다. R&D 비용처럼 농특세 비과세 대상인 감면액은 제외한 수치다. 감면액은 1년 전(4조 1016억 원)에 비하면 4.1% 늘고 4년 전(1조 8831억 원)과 비교하면 2.3배나 증가하며 꾸준히 늘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실제 농특세 신고액(8251억 원)을 빼면 지난해 실질적인 공제액은 3조 4463억 원으로 대폭 줄어든다.
농특세 납부액의 상당 부분은 통합 투자세액공제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천 의원과 국세청에 따르면 통합 투자세액공제 신고액은 2021년 3696억 원에서 2023년 1조 7802억 원으로 급증했다. 이 중 2023년 통합 투자세액공제액에 따른 농특세 신고분은 3500억 원가량으로 추정된다. 특히 통합 투자세액공제 중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공제액은 7432억 원으로 여기에서 1400억 원 수준의 농특세가 납부된 것으로 추산된다.
재계에서는 첨단기술만이라도 농특세를 유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제인협회는 지난달 국회에 반도체 시설·설비투자 세액공제분에서 납부해야 하는 농특세를 유예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R&D 세액공제는 농특세에서 면제되는데 설비·시설투자는 면세되지 않는 것은 일관성 측면에서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이다.
정부 내에서도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의 투자분에 대해서는 농특세를 제외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정부 안팎에서는 면제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농어촌 민심을 의식해 정치권이 쉽게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농특세는 전액 농어촌 지원·발전 사업 재원인 농어촌구조개선 특별회계로 들어간다. 한 회계법인의 세무 담당 임원은 “조특세법에서도 감면 항목 중 일부를 농특세로 내려 보내게 한 이유는 기업이 본 세제 혜택 중 일정 부분을 떼서 농어촌 지역 발전에 기여하라는 취지였을 것”이라며 “정치권이나 정부 입장에서는 면세 여부를 결정하려면 정책적 판단을 먼저 내릴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도 “농특세가 농어촌 재원으로 쓰인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면세 여부 판단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설비투자 활성화와 첨단산업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정치권과 정부가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설비투자 촉진을 통해 내수 진작을 도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설비투자는 전 분기보다 1.2% 감소해 2개 분기 연속 내림세를 이어갔다.
일각에서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정치권에서 추진하는 반도체 세액공제율 상향 효과가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반도체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을 현행보다 10%포인트 올리는 입법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농특세를 고려하면 실질적인 세액공제율 인상 효과는 8%포인트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글로벌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업들 입장에서 투자를 멈추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투자 장려 측면에서 농특세 조정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정부가 실질적으로 장려하는 것은 세액공제 하나밖에 없다”며 “반도체와 같은 업종에 보조금도 지급하지 않는 상황에서 세액공제분을 조금씩 떼 내게 되면 세액공제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