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국내 벤처캐피털(VC) 업계의 목표는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 비상장기업) 육성이 아닙니다. 매출 100억 원 이상, 영업이익률 2~5% 수준의 적당한 벤처기업을 키워 상장시키는 데 급급할 뿐이죠.”
최근 만난 한 스타트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VC 심사역으로부터 ‘유니콘의 꿈을 포기하라’는 조언 아닌 조언을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사업 확장에 대한 포부를 밝혔지만 흑자 전환 등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하라는 얘기였다고 한다. 단기간에 외형 성장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가 수반돼야 하는데 시장 여건이 아직 냉랭하다는 이유에서다.
유니콘은 글로벌 스타트업 시장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하나의 척도로 평가된다. 올해는 단연 인공지능(AI) 기업에 투자가 쏠렸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전 세계 유니콘 상위 100개 기업 중 21개가 AI 기업으로 집계됐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설립한 AI 스타트업 xAI는 올 5월 60억 달러(약 8조 1800억 원) 조달에 성공하며 240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유럽에선 미스트랄AI, 일본에선 사카나AI가 유니콘으로 급부상했다.
반면 AI 열풍에 소외된 한국은 올해 들어 한 곳의 유니콘도 배출해내지 못했다. 그나마 생성형 AI 솔루션을 개발하는 업스테이지가 4월 10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한 게 올해 국내 스타트업 중 최대 규모였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유니콘이라는 목표가 ‘언감생심’이라는 VC 업계 일각의 관점을 마냥 잘못됐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유니콘이 되더라도 회수가 어려운 한국 투자 업계의 현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벤처 시장의 분위기가 여전히 위축된 가운데 정부는 이달 초 ‘선진 벤처투자 시장 도약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11조 원 규모였던 국내 벤처투자 시장 규모를 2030년 20조 원까지 키우겠다는 원대한 계획이 담겼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업형벤처캐피털(CVC)에 대한 규제 완화, 스타트업 인수합병(M&A) 활성화 등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 AI·로봇 등 혁신적인 기술을 보유한 창업자가 투자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유니콘 기업으로 도약하는 시점이 앞당겨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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