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나 정부가 실패하는 원인은 대개 사람이 아니라 조직에 있다. 세계 최고의 전문가만 영입하면 획기적인 기술이나 정책을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번지수가 틀렸다. 대부분 조직에서 진짜 문제는 아이디어와 기술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데 있다.
복사기의 대명사였던 미국의 제록스사는 이미 1970년대 초 PC와 마우스 등 현대 컴퓨터의 핵심 기술을 대부분 가지고 있었음에도 인터넷 시대에 낙오자가 됐다. 대신 이들의 기술을 가져와 초대박을 터뜨린 것은 애플의 스티브 잡스였다. 제록스라는 거대 조직이 오히려 혁신 기술의 활용을 가로막는 장애 요인이 됐던 것이다.
요즘은 인공지능(AI)만 도입하면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키우는 조직이 많다. AI로 생산성도 높이고 각종 문제의 해법도 찾으며 연구개발(R&D)도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전문가를 영입한다고 조직의 경쟁력이 높아지지 않듯이 아무리 강력한 AI를 도입해도 이를 뒷받침하는 조직 구조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AI시대 조직의 첫 번째 덕목은 조직 내에 역동적인 혁신 생태계를 키우는 것이다. 혁신은 적지 않은 실패를 전제로 한다. 특히 AI는 ‘사용하면서 배우는(learning by doing)’ 특징을 갖는다. 실패가 두려워 다른 곳에서 검증된 AI만 사용하려 한다면 어느 기업도 제대로 된 학습을 할 수 없고 그 결과 자신만의 경쟁 우위를 만들 수 없다. 세계 최초 AI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구글이 수많은 개발 프로젝트에서 실패를 맛본 것으로도 유명한 것은 이 같은 사실을 잘 말해준다.
두 번째 과제는 산업 조직의 특징인 위계 구조를 탈피하는 일이다. 한마디로 피라미드형 조직을 역피라미드형 조직으로 바꾸는 것이다. 여기서 피라미드는 힘의 상하 관계가 아니라 의사 결정의 자율성을 의미한다. 산업 조직처럼 소수가 판단을 내리고 다수가 이를 기계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조직 구성원이 직위가 높든 낮든 주도적으로 판단하고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과 AI가 하는 일이 서로 보완 관계를 이루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플랫폼 조직이 돼야 한다. 지금까지 조직은 당연히 구분을 짓는 경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자원을 직접 보유하거나 아니면 다른 조직에 아웃소싱하는 방식을 취했다. AI 시대 조직은 이런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개방적 플랫폼을 활용한 쌍방향 협력 관계로 다른 사람의 자원을 자기 것처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예전에는 각종 장애 요인 때문에 이런 플랫폼 조직을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이제 AI가 이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 기업과 기업의 경계를 세우는 대신 이를 하나로 묶는 조직화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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