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7일 오전 찾은 전남 해남군 화원면 용호리는 마을 전체가 녹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곳은 가을철 김장배추와 겨울철 월동배추의 주산 단지다. 총 396만 6942㎡(약 120만 평)의 밭에서 생산되는 배추의 85%가 월동배추, 15%가 김장배추다. 북쪽으로는 해발 294m의 지령산을 두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용호리의 배추 농가들은 그중에서도 김장용 배추 수확을 한 달여 앞두고 있다.
이곳에서 39년째 배추 농사를 짓고 있는 최동환(69) 씨는 “겉으로 보면 푸른색의 배춧잎들이 무성해 많이 자란 것 같지만 아직 속이 제대로 영글지 않았다”며 “올가을은 이상고온 탓에 예년보다 열흘 정도 출하 시기가 밀릴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씨를 비롯한 용호리의 배추 농가가 통상적으로 가을철 김장용 배추를 거둬들이는 시기는 다음 달 10일 전후다. 배추의 생육 기간(70일)을 고려해 주로 9월 초부터 파종한다. 하지만 올해는 9월 말까지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이상고온 현상이 이어지며 배추의 성장 속도가 더딘 상황이다.
최 씨도 용호리에 약 6만 2809㎡ 규모의 배추 농사를 짓고 있다. 지난해에는 약 330㎡당 9~10포기 정도를 생산했는데 올가을에는 많아야 8포기 정도로 수확량이 줄 것으로 보인다. 최 씨는 “해남 지역도 전년과 비교할 때 생산량이 10% 정도 줄 것 같다”며 “그래도 폭염 때문에 여름 배추 농사를 망친 강원도 고랭지 농가에 비해서 생육 상태는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폭염과 이상고온이 불러온 ‘금(金)배추’ 사태는 11월 말 시작되는 김장철에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최 씨의 예상이다.
다만 소매 배추 가격은 김장 시기를 앞두고 오름세다. 가격 조사 기관인 한국물가협회에 따르면 다음 달 배추 소매가격은 포기당 평균 5300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11월 기준 최고가로 전년 대비 22.5% 비싸다. 경우에 따라서는 생산에 크게 문제가 없어도 소매가는 높고 농민이 손에 쥐는 돈은 적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 씨는 “최근 인건비는 물론 퇴비·비료 등 자재비가 많이 올라 농가들이 힘들다”면서 “정부가 최근 오른 자재비를 지원해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요청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김장철 배추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이달 중에 수급 안정 대책을 발표하기로 했다. 김범석 기획재정부 1차관은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김장철을 대비해 배추와 무 등 생육 관리를 철저히 하는 한편 김장 재료 공급 확대, 할인 지원 등을 담은 김장 재료 수급 안정 대책을 이달 중 발표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 가용 물량을 일 최대 200톤 방출하고 출하장려금 지원을 통해 조기 출하를 유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형 유통 업체도 김장철 배추 가격 안정을 위한 판촉 활동에 나서고 있다. 홈플러스는 해남 절임배추(20㎏) 한 상자를 최저 3만 9900원에 판매하기 위해 9일부터 16일까지 1차 사전예약을 받았다. 이마트도 2상자 이상 구매 시 일반 절임배추는 2만 9840원, 베타후레쉬 절임배추는 3만 6800원에 예약 판매하고 있다. GS더후레쉬는 신선배추는 3통에 8800원씩 판매하고 절임배추는 산지에 따라 해남 3만 4800원, 괴산 3만 9800원, 강원 5만 2800원에 예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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