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가 시총 1조 달러를 돌파한 것은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에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의 위상을 되새기게 한 사례로 평가된다. 과거 파운드리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이 넘겨준 도면대로 칩을 만들어내는 하청 업체 취급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인식도 AI 시대를 맞아 반도체 집적도가 물리적 한계에 다다를 정도로 미세해지면서 달라졌다. 초미세 공정과 패키징에서 독보적 능력을 갖춘 TSMC를 제외하면 설계도대로 실물 칩을 찍어낼 수 있는 기업이 사실상 사라져 독주 체제를 갖췄기 때문이다. TSMC가 ‘슈퍼을’에서 ‘슈퍼갑’으로 올라서게 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TSMC의 입지는 ‘3㎚(나노미터·10억 분의 1m)대 시대’로 진입하며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 공정이 양산에 진입하자 대부분의 빅테크들이 TSMC와의 동맹을 두텁게 하고 있다. TSMC의 최대 고객인 애플이 대표적이다. 애플은 TSMC가 개발한 3나노 공정을 처음 이용해 탄생한 A17 프로 칩을 아이폰15 프로의 두뇌로 채택했으며 지금도 최신 칩인 A18과 M4 등을 TSMC를 통해 공급 받고 있다. 챗GPT 등 초거대 AI 서비스의 기반이 되는 서버용 AI 가속기의 공급망 정점에도 TSMC가 있다. 최근에는 구글마저 TSMC와 협업을 시작하면서 삼성전자의 오랜 고객이 TSMC로 넘어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같은 독주 태세는 점유율 수치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올해 2분기 기준 TSMC의 점유율은 62%로 13%를 기록한 2위 삼성전자와 약 50% 가까이 차이를 벌렸다. 2년 전인 2022년 2분기 기준 TSMC 56%, 삼성전자 13%를 기록했던 때와 비교해 격차가 더 벌어졌다.
선단 공정에서 TSMC의 독주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경쟁자인 삼성전자와 인텔이 추격은커녕 현상 유지조차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외에도 스마트폰·메모리반도체 등 주요 사업 분야에서 모두 위기를 겪고 있어 당장 파운드리 경쟁력 제고에만 신경 쓸 수도 없다. 임직원들이 하나로 힘을 모아야 할 시기지만 올해 7월 노조가 창사 첫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노사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점도 뼈아프다. 인텔 역시 파운드리에 천문학적 투자를 집행했지만 수익 실현이 지연되면서 회사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인텔은 올해 상반기 약 27억 달러(약 3조7000억원)의 손실을 내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에 돌입한 상태다. 회사는 최근 전 세계 직원 1만 5000명에게 우선 해고 통지를 내렸다.
경쟁사들이 주춤하는 사이 TSMC가 생산능력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며 독주 체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파운드리 첨단 공정이 들어설 미국 테일러 신공장과 평택 공장의 공사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삼성전자 등과 대조적이다.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AI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TSMC의 첨단 패키징 공정 ‘CoWoS’ 라인은 2025년 월간 7만~8만 장, 2026년에는 15만~16만 장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공정은 AI 반도체 생산 과정의 주요 병목이어서 늘어난 생산력이 그대로 매출로 이어질 수 있다. TSMC는 2025년 상반기로 예정됐던 미국 애리조나 팹도 앞당겨 가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만 언론 등에 따르면 애리조나 팹은 최근 4㎚ 공정을 통해 애플 A16 생산에 돌입했다. 첫 번째 팹인 애리조나 팹의 조기 가동으로 향후 건설될 최첨단 팹 가동 일정 또한 당겨질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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