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 50년을 맞은 롯데웰푸드(옛 롯데제과)의 ‘가나초콜릿’은 주원료 카카오(코코아 가공 전 열매) 수입국인 아프리카 가나에서 이름을 따왔다. 세계 2위 카카오 생산국인 가나가 올 들어 이상기후로 작황이 부진해 국제 카카오 가격이 치솟자 “가나산(産) 빠진 가나초콜릿을 만들게 생겼다”는 말이 나왔다. 급기야 최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가나 현지의 카카오 농장을 찾아 수급을 직접 챙기기까지 했다.
이상기후는 국내외 식품 업계와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봄에는 사과 가격이 개당 1만 원까지 치솟더니 이번 가을에는 배추 값이 포기당 2만 원을 훌쩍 넘었다. 과일이나 채소를 조금이라도 싸게 판다는 소식이 들리면 마트 문이 열리기도 전에 가서 줄을 서는 ‘오픈런’이 벌어졌다. 일부 식당에서는 밑반찬으로 나오던 김치가 사라졌다. 최근에는 토마토 소매가격이 1년 전보다 51.7% 뛰면서 유명 햄버거 프랜차이즈가 일부 버거 메뉴에서 토마토를 빼기로 했다. 분식집에서는 ‘금(金)금치’로 불리는 시금치 대신 오이 등을 김밥에 넣는다.
신선식품 가격 급등이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과거에도 흉작을 기록한 해 일시적으로 가격이 올랐다가 이듬해 다시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이상 고온이 이어지고 주요 농산물 재배지와 어종 서식지가 북상하는 현재 상황은 다르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2050년대면 국내 고랭지 배추 재배 면적의 97%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사과의 경우 재배지가 대구에서 계속 북상하고 있으며 2100년이 되면 강원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나마 지금은 비싼 가격을 주면 살 수 있는 국내산 배추나 사과를 아예 찾아보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부는 대체 농산물을 수입하는 방식으로 발등의 불을 끄고 있다. 배추 값 급등에 대응해 중국산 배추를 수입하고 대형마트 등 유통 업체에 장려금을 지급해 배추의 조기 출하를 유도했다. 올봄 사과 값이 치솟았을 때는 오렌지·바나나 등을 긴급 수입하고 할당관세를 적용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전 세계 식량 생산량이 감소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우리가 필요할 때마다 대체 농산물을 수입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한국은 연간 수요량의 약 80%인 1800만 톤을 해외에 의존하는 세계 7위 곡물 수입국이다. 국제 식량 가격 상승에 취약하다는 뜻이다.
이상 기후 현상이 계속되면서 글로벌 식량 생산량과 식량 가격에도 거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발간한 ‘2024 세계 식량위기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지난해 18개국 7700만 명이 극심한 식량 불안에 시달렸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2050년까지 글로벌 식량 생산량이 최대 30% 감소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식량 가격은 50%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세계 각국은 식량위기에 대비해 식량 안보를 강화하는 중이다. 세계 최대 농산물 수입국인 중국은 6월부터 식량의 해외 의존 감소와 식량 자급을 목표로 한 식량안보법을 발표했다. 일본 역시 25년 만에 농업기본법을 개정하고 기본 이념에 ‘식량 안전 보장’을 새롭게 추가했다. 일본과 중국은 2022년 세계식량안보지수(GFSI) 조사에서 전체 113개국 가운데 각각 6위와 25위를 기록한 국가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은 39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었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1970년 86.2%에서 2021년 44.4%로 내려갔다. 쌀을 제외하면 11.4%로 더 낮아진다.
전문가들은 정부 주도로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신품종을 개발하고 재배 및 저장 기술 등에 대한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벨기에 등 다른 국가에서 진행 중인 미래의 기후 상황을 가정해 농산물을 재배하는 실험을 참고해볼 만하다. 한국의 취약한 식량자급률을 고려해 식량안보법을 제정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식량자급률 목표를 세워 이를 달성할 수 있는 구속력 있는 조치를 취하자는 것이다. 아침 식사 대용으로 먹던 사과를, 식탁 위에 기본 반찬으로 당연히 올라오던 김치를 영원히 볼 수 없게 되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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