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TSMC 등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들이 광반도체 기술 선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면서 데이터 양이 급증하고 있는데 기존 전선을 빛으로 바꾸면 더 빠르고 정확한 정보 연산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AI 반도체 회사인 엔비디아는 물론 반도체 업계에서 최고의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 회사들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은 자체 광반도체의 이름을 ‘I-큐브So’ ‘I-큐브Eo’ 로 정하고 제품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I-큐브 E와 S는 회사의 칩 결합 기술의 브랜드다. 이 명칭 뒤에 새롭게 붙은 ‘o’는 옵틱스, 즉 광학을 의미한다.
광반도체는 실리콘 포토닉스라고도 불린다. 말 그대로 전자기기 속에서 다양한 반도체가 전기가 아닌 빛으로 통신할 수 있도록 돕는 칩이다.
현재까지 반도체 칩들은 구리 등 금속으로 만들어진 전선을 통해 데이터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최근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 방식이 한계에 봉착했다. 데이터가 폭증하면서 반도체와 구리 전선 곳곳에서 병목 현상이 일어나며 발열과 연산 저하 현상이 심화하는 것이다.
최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보 이동통로 수를 극대화한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이 각광 받고 있다. 하지만 전력 효율과 비용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광반도체의 빛은 전선보다 정확하고 빠르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I-큐브So’의 광반도체당 정보 이동 속도가 2024년에는 초당 3.2Tb(테라비트·1조 개의 최소 데이터 단위), 2028년에는 12.8Tb에 이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의 데이터 이동 속도보다는 수백 배 빨라지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6월 파운드리 포럼을 통해 2027년에 광반도체를 처음으로 양산에 도입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최근 인텔 출신의 광학 전문가인 박현대 마스터를 파운드리 사업부에 영입하면서 상용화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광반도체는 전도 유망한 반도체 솔루션으로 평가 받는다. 시장조사 업체 마켓앤마케츠는 지난해 14억 달러에 불과했던 관련 시장 규모가 2028년에는 50억 달러(약 6조8000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광반도체 기술 측면에서 삼성을 앞서고 있는 회사는 대만 TSMC와 미국 인텔이다. TSMC는 일찌감치 광반도체의 도입 가능성과 잠재력을 대중에게 공개해왔다. 회사의 광반도체 브랜드를 ‘COUPE’로 정의하고 삼성보다 2년 빠른 내년에 이 기술을 처음으로 양산에 도입할 예정이다.
광반도체를 제작할 때 꿈의 후공정 기술로도 언급되는 하이브리드 본딩 등 각종 고난도 기술을 모두 집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엔비디아도 이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TSMC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 등 차세대 메모리와도 직결될 수 있어서 양산에 본격적으로 적용된다면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굴기를 내세우면서 주요국의 칩 기술을 추격하고 있는 중국도 광반도체에 적극적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 국영 연구소인 JFS연구소는 광반도체 기술에서 중요한 진전을 이뤘다. 인민일보는 “광전자 공학 기술의 몇 안 되는 공백을 메운 중국 최초의 성과”라고 평가했다.
세계 각국에서 광반도체 기술 선점에 나서고 있으나 한국은 관련 기술 기반이 취약하다는 진단도 나온다. 특히 고급 인재들이 광반도체를 전공하더라도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업체나 연구소가 마땅치 않아 해외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광반도체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국가적인 지원과 인력 양성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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