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증권거래소가 기업 가치 제고 계획을 추진하면서 각종 공시 부담에 상장폐지를 선택하는 일본 기업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도쿄증권거래소는 상장기업 수에 집중하기보다는 개별기업의 중장기적인 기업가치 제고를 우선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22일 여밀림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이 발표한 ‘도쿄증권거래소의 기업가치 제고 계획 현황과 시사점’에 따르면 7월 기준 도쿄증권거래소 프라임 시장 상장사 가운데 ‘자본비용과 주가를 의식한 경영 실천 방안’을 공시한 기업 비중은 86%로 지난해 12월(49%) 대비 37%포인트 증가했다. 스탠다드 시장 상장사는 44%로 25%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지난해 3월 일본판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인 ‘자본비용과 주가를 의식한 경영 실천 방안’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각 상장사가 기업가치 저평가 요인을 분석하고 개선방안을 수립할 것을 요청했다. 공시 도입 이후 참여 기업의 주가는 미참여 기업 주가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공시 등으로 상장 유지비용이 증가하면서 상장회사가 줄어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까지 일본의 신규 상장기업 수는 상장폐지 기업 수보다 많았으나 올해 9월을 기준으로 추세가 역전됐다. 신흥기업 중심인 그로스 시장에서 신규 상장사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영자인수(MBO), 완전 자회사, 인수합병(M&A) 등도 늘어나고 있다. 도요타 등 주요 기업이 상장된 프라임 시장에서도 영문공시 의무화 등 비용 증가로 상폐를 선택하는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현 추세대로면 2013년 오사카증권거래소와 통합한 이후 처음으로 상장기업 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도쿄증권거래소는 상폐 증가에도 기업가치 향상 실현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성장력 있는 기업에 투자자금이 모이는 시장이 돼야 하는 만큼 상장기업 양보다는 질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주가순자산비율(PBR), 자기자본이익률(ROE) 등 정량 지표와 함께 상장사의 노력과 공시 내용, 국내외 투자자 평가 등을 정성 평가해 전반적인 진행 상황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은 밸류업 발표 이후 5개월 동안 공시에 참여한 기업이 13곳에 불과한 수준이다. 주주가 경영자를 모니터링하는 메커니즘, 지속적인 성장과 중장기적인 기업가치 향상, 투자결정에 중요한 정보를 포함한 적절한 기업지배구조 공시는 기업 입장에서도 용이한 자금조달 수단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진단이다. 여 선임연구원은 “올해 일본 주주총회는 도쿄증권거래소의 정책 실현과 기업가치 제고에 대한 경영평가 장으로 평가되고 있다”며 “국내 밸류업 프로그램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시장 참여자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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