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DC를 방문 중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3일(현지 시간) “설비투자와 소비를 중심으로 내수 회복이 가시화됐지만 건설이 부진한 가운데 내수 회복 과정에서 수입이 증가하고 수출이 조정 받으면서 성장 강도가 예상에 미치지 못했다”며 “향후 경기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내수·민생 대책의 집행을 가속화하고 미 대선, 주요국 경기, 중동 정세 등 대내외 여건을 면밀히 점검해달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내수 부문의 회복이 더딘 가운데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수출마저 앞으로 성장세가 약해질 수 있어 올해 2% 중반대 성장률 달성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입을 모은다. 미 대통령 선거를 전후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4분기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정부의 성장률 예상치는 2.6%, 국제통화기금(IMF) 2.5%, 한국은행 2.4%다. 한은 수치를 기준으로 해도 올해 2.4% 성장하려면 4분기 GDP가 전기 대비 1.2%를 기록해야 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4분기 1.2%도 쉽지 않은 수치로) 현재로서는 잘해야 연간 경제성장률이 2.3%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문별로 보면 내수는 뾰족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내수의 한 축인 민간소비(0.5%)는 올 들어 크게 나쁘지 않았지만 투자가 계속 부진하다. 건설투자는 2분기(-1.7%)에 이어 3분기(-2.8%)까지 2분기 연속 마이너스다. 설비투자는 3분기에 6.9% 늘었지만 앞서 1분기(-2.0%)와 2분기(-1.2%)는 좋지 않은 흐름을 보였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은의 금리 인하가 경기에 모멘텀을 줄 정도는 아니다”라며 “내수는 4분기에도 계속 안 좋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4분기부터는 수출 증가세도 어느 정도 꺾일 것으로 전망된다. 수출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 지난해 10월부터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 상반기 누렸던 기저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여기에 스마트폰과 PC 부문 반도체 업황 둔화 우려와 중국의 저성장 리스크까지 겹치는 모양새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20일 수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2.9% 감소했다.
10%의 보편 관세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수출 동력은 더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연구원은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하면 역대 최대 규모로 커진 미국의 대한국 무역적자 해결을 한미 통상 현안 중 최우선 과제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고용도 걸림돌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올해 연간 취업자 23만 명 증가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지금까지의 고용동향을 보면 4분기 월간 평균 취업자가 30만 명은 넘어야 23만 명이 된다. 그러나 취업자 수 증가 폭은 7월부터 10만 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내수 부진이 고용시장으로 번지면서 다시 소비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경기 전반에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정부가 쓸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다. 올해 29조 6000억 원 규모의 세수 결손이 발생했다. 정부에서는 조만간 자영업자 대책을 발표해 내수 부양을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실탄’이 많지 않다. 김홍기 한국경제학회장은 “지금 한국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모두 마음대로 펼치기 힘든 국면”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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