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올 3분기에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인공지능(AI) 칩 업계에서 독주하고 있는 엔비디아의 공급망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며 일각에서 제기되는 ‘반도체 겨울론’을 불식시켰다. SK하이닉스는 4조~5조 원대로 예상되는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의 영업이익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24일 SK하이닉스는 올 3분기 잠정 영업이익이 7조 3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영업손실 1조 7920억 원에서 흑자 전환했다고 발표했다. 매출은 17조 5730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94% 올랐다.
영업이익과 매출 모두 분기 최대다. 특히 영업이익은 메모리 초호황기였던 2018년 3분기 당시의 6조 4000억 원을 훌쩍 뛰어넘으며 새로운 기록을 썼다. 영업이익률은 40%대를 웃돈다. 지난해 4분기 메모리 불황에서 벗어나 흑자로 전환한 후 3개월 연속으로 급격하게 상승했다.
SK하이닉스 측은 “수익성 높은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판매가 늘며 D램·낸드 모두 평균판매단가(ASP)가 전 분기 대비 10% 중반 올라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거뒀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가 역대 최대 실적을 낸 배경으로는 단연 고대역폭메모리(HBM)가 꼽힌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만든 AI용 메모리다.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회사의 HBM은 AI 반도체 생태계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엔비디아의 선택을 받고 있다. 엔비디아의 최상위 AI 반도체인 ‘블랙웰’에는 SK하이닉스의 5세대(HBM3E) 칩이 경쟁사 제품을 제치고 단연 압도적인 비율로 활용되고 있다.
회사는 4분기 이후의 실적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HBM3E 8단에서 12단 제품으로의 전환과 함께 고용량의 기업용 저장장치(eSSD), DDR5 D램 등 첨단 제품 위주의 생산으로 수익성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김우현 SK하이닉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올 3분기 글로벌 1위 AI 메모리 기업으로서 위상을 공고히 했다”며 “앞으로도 시장 수요에 맞춘 유연한 공급 전략으로 수익성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매출 4배 뛴 HBM, 내년엔 12단이 주력…"생산능력 키워 대응"
SK하이닉스가 시장 전망치였던 6조 7000억 원대를 훌쩍 뛰어넘는 7조 3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남길 수 있었던 배경은 독보적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지배력이 가장 크다. 역대 최대 실적은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공지능(AI) 메모리 수요에 맞춰 매끄러운 기술 전환에 성공하면서 ‘AI 메모리 강자’로서의 위상을 수성하겠다는 목표를 과감하게 드러낸 것이다. 범용 D램으로 분류되는 DDR5·LPDDR5 제품까지 수요가 성장하면서 HBM에 의존하지 않는 탄탄한 수익 구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았다.
◇HBM 매출, 330% 껑충=SK하이닉스는 HBM 시장에서 5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세계 AI 반도체 시장을 주름잡는 엔비디아와 최첨단 HBM 부문에서 끈끈하게 협력하면서 ‘승자의 독식’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3분기 실적에도 이 분위기는 그대로 반영됐다. 김우현 SK하이닉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HBM 매출은 전 분기 대비 70% 이상, 전년 동기 대비 330% 이상 증가하며 실적 성장세를 이끌었다”고 발표했다. 그는 “3분기 동안 5세대 HBM(HBM3E) 출하량이 기존 4세대(HBM3)를 넘어섰다”고도 강조했다. SK하이닉스는 연초에 엔비디아의 8단 HBM3E 퀄(승인) 테스트를 통과해 본격적인 양산을 시작했다. HBM3E의 출하량이 전작을 추월했다는 것은 올해 신제품으로의 수익 구조 전환이 상당히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HBM 위기론? 시기상조”= SK하이닉스는 올 4분기와 내년 HBM 사업에 대해서도 상당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특히 HBM3E 12단 사업 전망을 중점적으로 설명했다.
12단 제품은 D램 적층 수를 기존보다 4단 늘려서 용량을 극대화한 제품이다. SK하이닉스는 올 9월 엔비디아 퀄 테스트를 완료하고 본격적인 양산에 돌입했다. SK하이닉스는 “4분기에는 예정대로 HBM3E 12단 제품의 출하를 시작해 내년 상반기 중 12단 제품 비중이 전체 HBM3E 출하량의 절반 이상으로 증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하반기에는 판매 물량의 대부분이 12단 제품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8단에 이어 또 한번 자연스러운 고도화에 성공하는 셈이다.
SK하이닉스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HBM 위기론’에 대해서도 ‘시기상조’라며 논란을 일축했다. 고객사들의 AI 투자 확대 의지로 공급 요청이 예상치를 일찌감치 넘어선 데다 HBM 기술 난도 증가와 수율 등을 고려하면 공급이 수요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들의 근거였다. SK하이닉스는 이미 내년에 공급할 물량과 가격 협의가 대부분 완료돼 제품이 ‘솔드아웃’됐음을 강조했다. 김규현 SK하이닉스 D램 마케팅담당은 “HBM3E 판매 증가로 내년에는 평균 HBM 가격이 전년 대비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HBM3E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실리콘관통전극(TSV) 설비투자, 10나노급 5세대급 D램 공정 전환도 확대할 예정이다.
◇고성능 메모리도 성장세=SK하이닉스는 고민거리였던 범용 D램에 관한 수요도 점차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해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주요 매출원인 PC·스마트폰용 D램 시장이 크게 움츠러들었지만 내년에는 AI 기능을 본격적으로 탑재한 PC와 스마트폰이 출시되면서 상황이 바뀔 수 있다고 본 것이다.
SK하이닉스는 범용 D램을 포함한 비트그로스(D램의 최소 단위인 비트 성장률)가 올해 10% 중후반이었다면 내년에는 10% 후반대로 소폭 상승할 것으로도 예상했다. 회사 측은 “AI PC 판매가 확대될수록 LPCAMM2와 같은 고성능·저전력 제품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또 “AI 스마트폰의 성장으로 D램 채용량 증가와 LPDDR5X·LPDDR5T와 같은 고성능 메모리 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낸드플래시 시장은 전반적으로 침체됐지만 자회사 솔리다임의 활약으로 기업용 저장장치(eSSD) 위주로 수익 강화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는 현재 60TB(테라바이트) eSSD를 업계에서 유일하게 대량 공급하고 있고 122TB 제품도 내년 상반기 공급을 목표로 인증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김 CFO는 “eSSD는 3분기 낸드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며 “238단 기술을 적용한 신제품 SSD를 통해 시장에서의 위상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