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에 국내 대표 반도체 빅2의 3분기 성적표가 엇갈렸다. 이유는 AI 시대 메모리라 불리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AI 메모리를 내세운 SK하이닉스가 분기 최대 실적을 갈아치운 사이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은 이익이 1조 원 이상 줄며 우울한 결과를 받아들었다.
24일 SK하이닉스는 3분기 영업이익 7조 300억 원을 기록하며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의 이익을 넘어섰을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에서 삼성전자 DS 부문을 앞선 것은 양측 모두 흑자를 낸 분기 기준 올해 1분기(SK하이닉스 2조 8860억 원, 삼성전자 1조 9100억 원)에 이어 두 번째다. 삼성전자의 3분기 잠정 영업이익은 9조 1000억 원인데 증권가는 DS 부문 영업이익을 전 분기(6조 4500억 원)보다 1조 원 이상 줄어든 4조~5조 원대로 추정하고 있다.
두 회사의 희비를 가른 것은 AI 메모리다. AI메모리는 PC·모바일·서버 등 응용처에 상관없이 탑재되는 범용 메모리와 구분되는 개념인데 고성능 AI 연산에 필수적인 메모리를 통칭한다. 범용 메모리와 달리 설계나 기획 단계부터 고객사와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제작되며 개별 계약으로 판매되는 것도 차별점이다. 서버용 AI 반도체에 붙는 HBM·eSSD가 대표적이다.
SK하이닉스가 분기 최대 실적을 기록한 배경에도 HBM과 eSSD가 있다. 김우현 SK하이닉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당사는 업계 선도 제품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HBM·eSSD 등 고부가 제품 판매를 확대하며 D램과 낸드 모두에서 수익성이 전 분기 대비 대폭 개선됐다”면서 “이는 초호황기를 기록했던 2018년의 이익 규모를 넘어서는 실적”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330% 이상 성장한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의 업계 내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SK하이닉스는 AI 학습과 추론용으로 쓰이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에 탑재되는 HBM을 사실상 독점 공급해오며 최강자 입지를 굳혔다. 올해 3월에는 5세대 HBM(HBM3E) 8단을 업계 처음으로 납품한 데 이어 최근 12단 제품도 최초로 양산을 시작해 공급을 앞두고 있다.
반면 AI 흐름에 뒤지면서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범용 메모리 매출 의존도가 높아졌다.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로 스마트폰과 PC 등 전방 정보기술(IT) 수요 회복이 지연되며 범용 메모리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섰는데 이 영향으로 삼성전자는 비교적 암울한 3분기 성적표를 손에 쥐었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HBM 납품을 추진했지만 지연되고 있고 AI 반도체 위탁 생산에서도 TSMC와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3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하면서 이례적으로 설명 자료를 내고 “HBM3E의 경우 예상 대비 주요 고객사향 사업화가 지연됐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반도체 산업의 부익부 빈익빈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며 “AI라는 거대한 물결에 잘 올라탄 기업들과 그렇지 않은 기업 간 운명이 갈리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강욱 SK하이닉스 부사장은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4 반도체대전(SEDEX) 키노트에서 “그동안 반도체 혁신은 전 공정 설계 부문이 이끌어왔지만 이제는 소재·디자인만 갖고 새로운 산업을 리드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HBM·시스템인패키지(SiP) 등 패키징 기술과 솔루션 기술이 있어야 새 산업이 만들어지고 회사가 성장한다”며 “쉽게 말해 패키지를 지배하는 자가 반도체를 지배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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