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장기화, 미국과 중국의 금리 인하 등으로 전 세계 경제의 변동성이 커지며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올 들어 금과 은 등 귀금속 원자재가 최고가를 경신하면서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 어느 때보다 주목 받고 있는 양상이다. 다만 미국 경제가 ‘노랜딩(무착륙)’할 수도 있다는 전망으로 다음 달 열리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금과 달러에 대한 투자심리가 흔들릴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추격 매수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조언이 적지 않다.
25일 한국거래소 금시장에 따르면 ‘금 99.99_1㎏(금 현물 1㎏의 1g당 가격)’은 전날 대비 0.69% 내린 12만 82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가격이 13만 2970원까지 상승해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는 등 올 들어 50%가량 급등했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은 선물 가격도 10개월 동안 40% 이상 급등하며 33달러(약 4만 5543원)를 넘어서는 등 안전자산에 대한 투자자들의 선호도가 높아진 모양새다.
이에 금과 은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장지수펀드(ETF)와 상장지수증권(ETN)의 수익률도 가파르게 우상향하고 있다. 이날 ‘ACE KRX금현물 ETF’는 1만 8225원(-0.44%), ‘삼성 KRX 금현물 ETN’은 2만 2125원(-0.72%)에 장을 마무리했다. ‘KB 레버리지 은 선물 ETN’와 ‘한투 레버리지 은 선물 ETN’은 최근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이달에만 각각 10.44%, 17.83% 오른 상태다.
현물과 증권 상품을 가리지 않고 금과 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것은 불안한 국제 정세에 따른 영향이다. 특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장기화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자 금과 은 가격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 게다가 금리 인하기에 접어들며 또 다른 안전자산인 달러의 변동성이 확대되며 금과 은 등 귀금속 원자재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늘어난 점도 영향을 미쳤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통화정책 완화 구간에서는 금리 인하 기대와 경기 불확실성이 공존한다”며 “연초 이후 귀금속 섹터의 강세가 지속되며 고점을 거듭 경신한 금 투자와 단기 은 투자 매력이 부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미국 대선 이후 정책 방향성에 따라 이런 기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두 대선 후보 중 누가 당선돼도 미국 정부의 재정지출이 늘어나 장기적으로 달러가 약세를 보인다면 금과 은에 대한 투심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관세 정책, 카멀라 해리스 후보의 러시아 견제 등으로 강달러 현상이 나타나면 미 정부의 재정지출 증가세와는 별개로 금에 대한 투자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 특히 시장에서는 트럼프 후보의 승리를 점치고 있는 만큼 무역 규제 강화로 다른 국가들의 통화가치가 하락하면 자연스럽게 달러의 강세가 지속되고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금에 대한 투자 매력이 하락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미국 경제가 침체 없이 계속 호황을 유지할 수도 있다는 예측까지 나오며 금과 달러 등 안전자산에 대한 투자자들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김태홍 그로쓰힐자산운용 대표는 “미국 대선이 초접전을 유지하고 있어 달러 가치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미국 정부의 재정지출이 늘어도 경기가 노랜딩하면 달러가 강세를 유지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현재로서는 금 가격이 내려갈 뚜렷한 요인도 없어 ‘달러 강세=금 약세’라는 공식이 깨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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