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 29일은 세계건선협회연맹(IFPA)이 지정한 ‘세계 건선의 날’이다. 건선에 대한 오해와 편견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건선은 피부에 은백색 각질(인설)이 붙어있는 붉은 반점(홍반)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단순 피부병이 아니라 면역세포의 이상으로 전신 염증이 증가하면서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기 때문에 평생 관리와 치료가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 건선의 중증도 판단 기준으로 쓰이는 체표면적(BSA)과 건선 중증도 지수(PASI)가 환자들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므로 보완이 필요하다는 전문가 단체의 제언이 나왔다. 건선 환자의 삶의 질까지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중증도 분류 기준과 치료 목표가 도입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건선학회는 29일 '세계 건선의 날'을 맞아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특수 부위 건선을 포함한 건선의 치료와 새로운 건선의 중증도 및 치료 목표에 대한 전문가 합의안을 마련했다"며 이 같이 밝혔다.
정혜정 대한건선학회 재무간사(국립중앙의료원 피부과 교수)에 따르면 건선 환자의 약 80%는 여전히 질환으로 인한 삶의 질 저하가 상당하다. 특히 두피, 손톱, 손·발바닥 및 생식기 부위에 병변이 생기는 특수 부위 건선은 상대적으로 치료 반응이 좋지 않다 보니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삶에 질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대한건선학회가 중등증~중증 건선의 새로운 기준안 마련에 나선 이유다.
학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 중등증~중증 건선 기준은 PASI 10점 이상, BSA 10% 이상의 2가지를 필수 조건으로, 의사종합병가(PGA) 중등증 이상, 삶의 질 평가 10점 이상을 부가 조건으로 충족하도록 되어 있다. 그에 반해 유럽 등 국제 학술단체들은 중증도 조건을 완화하고 특수 부위의 건선을 포함하는 한편 치료 실패 경험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추세다. 병변이 생긴 부위가 넓지 않더라도 특수 부위를 침범하면 환자의 삶에 질에 끼치는 영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학회는 이러한 국제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문헌고찰을 통해 핵심 쟁점에 대한 설문항목을 만들었다. 이후 국내 저명한 건선 전문가 70여 명을 대상으로 두 차례 설문을 진행해 새롭게 합의된 중등증~중증 건선 기준안을 도출해 냈다. PASI와 BSA 두 가지 지표를 모두 고려하는 대신, PASI 10점 이상이거나 PASI 점수가 5~10점이더라도 특수 부위에 건선이 있으면 중증 건선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것이 새로운 합의안의 골자다.
방철환 대한건선학회 정보이사(서울성모병원 피부과 교수)는 "기존 중등증~중증 건선의 기준안안보다 중증도 점수의 개수를 줄이고 환자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특수 부위의 건선을 포함시킨 것이 주된 변화"라며 “특수 부위의 침범 면적과 중등도를 명시해 중등증~중증 건선 환자의 비율이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면서도 심한 고통을 받는 환자를 포함할 수 있는 기준을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건선의 진료지침이나 건선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 기준 등이 당장 바뀌는 것은 아니다. 체계적인 문헌고찰을 거쳤고 전문가들간 합의가 이뤄졌지만 진료지침에 반영되려면 더욱 많은 근거 논문이 축적돼야 한다는 것이 학회의 입장이다.
박은주 대한건선학회 홍보이사(한림대성심병원 피부과 교수)는 “이번 합의안은 건선이 단순히 피부 질환이 아닌 환자의 삶의 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질환이라는 질환 특수성과 이해도를 바탕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어 “추후 생물학적 제제를 포함한 건선 신약을 특수 부위 건선으로 고통받는 환자에게도 사용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는 의미가 크다"며 “새롭게 마련된 건선 중증도 기준안에 따라 건선 치료의 목표 및 환자들의 치료 계획 수립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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