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은 한국(2023년 기준 합계출산율 0.7명)과 일본(1.2명) 양국이 나란히 고군분투 중인 거대한 숙제다. 한국은 먼저 저출생을 경험하고 있는 일본의 해법에, 일본은 사회적 역동성이 강한 한국의 해법에 관심이 높다. 한일 양국의 대표 언론사가 저출생을 주제로 공동 기획에 나선 배경이다. 서울경제신문 취재팀과 와타나베 나츠메 교도통신 주한특파원은 한국·일본·유럽의 기업·정부·지방자치단체를 직접 찾아 저출생 탈출의 실마리를 찾아봤다. 기획·섭외와 인터뷰는 양 사 기자들이 공동으로 진행했다.
일본의 3대 종합상사인 이토추상사는 10여 년 전까지 ‘블랙 기업(악덕 기업)’으로 악명이 높았다. 긴 야근과 잦은 술자리는 인재 이탈, 노동생산성 저하로 이어져 회사의 발목을 잡았다. 구인난이 심해지자 위기의식을 느낀 경영진은 2013년부터 유연근무와 여성 임원 확대, 각종 복지 지원 등 특단의 조치를 단행했다. 일하는 방식 및 조직 문화를 쇄신한 후 10년여간 이 회사의 노동생산성(종업원 1인당 연결순이익 기준)은 5배나 올랐다.
특히 예상치 못한 부가 효과가 나타났다. 아이를 갖는 직원들이 늘기 시작한 것이다. 2012~2021년 이토추상사의 사내 출산율은 0.6명에서 1.97명으로 급증했다. 일본 도쿄 미나토구 본사에서 만난 고바야시 후미히코 이토추상사 대표이사 부사장은 “노동생산성을 강화하려는 취지였을 뿐 출산율을 높이려 도입한 정책들이 아니라서 우리도 매우 놀라웠다”고 전했다.
관련기사
이토추 외에도 다양한 기업들이 ‘일본 기업들은 보수적’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있었다. 저출생·고령화로 구인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기업 역시 생존을 위해 변화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재계의 대선배로 꼽히는 미무라 아키오 일본제철 명예회장이 10년 전 “저출생은 기업의 문제”라며 기업인들의 인식 변화를 촉구한 것도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일본 기업들은 채용 홈페이지에서부터 ‘일과 삶의 밸런스(워라밸)’를 강조하며 청년 인재들을 설득한다. 육아휴직 보장과 잘 갖춰진 사내 어린이집, 유연근무 및 재택근무, 주4일제 등도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일본에서 만난 기업 관계자들은 “최고경영자(CEO)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는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저출생 대책과 맞물려 확실한 효과를 내고 있다.
한국 역시 변화의 흐름이 거세다. 최슬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은 “한국도 10년 내로 청년들의 노동시장 신규 진입이 급감하면서 기업들이 어떻게 인력을 확보하고 유지할지 고민하게 될 것”이라며 “유연하게 일하는 것은 결국 창의적·효율적으로 일한다는 의미이고 이는 아이를 낳고 기르기 쉬운 삶과 맞물린다. 이러한 방향으로 기업도 노력해주고 사회도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