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진으로 수익성이 둔화된 유통사들이 자산재평가를 통한 재무 개선을 고민하고 있다. 부동산 등 유형자산 가치를 높여 신용등급을 올리고 리스크 관리 및 신사업 투자를 위한 자금 조달을 모색하는 것이다. 다만 사업 본질인 영업능력 개선보다 회계상 가치 증대에만 집중하면 중장기적으로 수익성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2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쇼핑은 자산재평가를 위해 감정평가법인과 논의를 진행 중이다. 이달 11일 김상현 롯데쇼핑 대표이사 부회장이 주재한 ‘2024 CEO IR DAY’에서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 토지 등 보유 부동산에 대한 가치를 재산정하겠다고 밝힌 후 구체적인 시행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것이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현재 감정평가법인 등과 프로젝트 협의를 시작하는 단계”라며 “재평가로 자산 및 자본이 증가하고 재무구조가 개선돼 기업 경영에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롯데쇼핑은 최근 2030년까지 쇼핑몰 ‘타임빌라스’ 신규 출점 등에 7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업계에서는 롯데쇼핑이 해당 자금을 원활히 조달하기 위해 자산재평가에 나서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자산재평가를 할 경우 자산 가치가 확대되고 부채비율이 낮아지는 효과가 나타나 저리로 자금을 끌어 쓸 수 있게 된다. 롯데쇼핑의 부채비율은 상반기 기준 186.5%로 업계에서도 높은 수준이다. 특히 그룹사 전반적으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기도 한 만큼 위기 상황에서 신속한 자금 확보가 가능하도록 준비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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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상반기 롯데백화점의 토지·건물 장부가액은 7조 864억원이다. 이를 현 시점에서 재평가하면 가치가 2~3배 오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롯데백화점 본점이 위치한 서울 중구 남대문로 81의 ㎡당 공시지가는 2009년 3430만 원에서 올해 6530만 원으로 약 2배 올랐다.
보유 부동산이 많은 다른 유통사들도 자산재평가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경기 둔화 국면에서 영업이 어려울수록 리스크 관리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유형자산의 가치를 높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부채비율이 각각 155.5%, 138.5%인 이마트나 신세계백화점 역시 자산 가치가 올라가면 기업 경영에 유리하다. 특히 신세계는 4분기에 기업 가치 제고 계획을 내놓겠다고 공시했는데 여기에 자산 재평가 방안이 포함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자산재평가가 유통사들에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통업의 본질은 부동산을 활용한 공간 비지니스로 영업이익을 창출하는 것인데, 토지·건물 가치 증대에 기대기 시작하면 본업 경쟁력이 추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계 측면에서도 자산재평가시 자본도 증가하는 만큼 순이익이 제자리를 걸으면 자기자본대비이익률(ROE)이 줄어 기업 가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토지 외 다른 유형 자산의 경우 재평가로 가치가 올라가면 향후 비용으로 처리해야 하는 감가상각 역시 증가하기 때문에 영업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자산재평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기업 경영에서 코너에 몰린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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