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 당국이 우오현(71) SM그룹 회장의 ‘0순위’ 후계자로 꼽히는 아들 우기원(32) SM하이플러스 대표에 대한 주식 물납 상속세 조사에 돌입했다. 세무 당국은 우 대표가 어머니이자 우 회장의 사실혼 배우자인 고(故) 김혜란 전 삼라마이다스 이사 보유 주식을 SM그룹 지배 아래 있는 재단에 기부 형식으로 넘기고 상속 재산을 줄이는 과정에서 편법 납세 회피 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31일 재계와 관가에 따르면 인천지방국세청은 지난 9월부터 우 대표가 납부해야 할 상속세 사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앞서 우 대표는 지난해 9월 모친인 김 전 이사가 사망하자 올 3월 4일 SM그룹의 지주사 격인 삼라 보통주 41만 4708주(12.31%), 동아건설산업 보통주 24만 9750주(6.22%), SM스틸 보통주 11만 5321주(3.24%)를 전량 상속받았다. 우 대표의 친누나인 우건희(33) 코니스 대표는 김 전 이사가 남긴 주식을 전혀 상속받지 않았다. 우 대표는 우 회장의 막내이자 법률상 배우자의 자녀까지 통틀어 유일한 아들이다. 우 회장은 본처와의 사이에서 우연아(47) 삼라농원 대표, 우지영(46) 태초이앤씨 대표, 우명아(43) 신화디앤디 대표 등 세 자매만 뒀다.
우 대표는 모친 사망 후 6개월 뒤인 올 3월 현금이 아닌 비상장사인 삼라의 주식을 물납하는 방식으로 상속세를 내겠다고 당국에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식 물납이란 상속세 납부 세액이 2000만 원을 초과하고 금융 재산이 이보다 적을 경우 주식으로 대신 세금을 낼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상속세 신고 기한이 김 전 이사가 사망한 지난해 9월의 말일부터 6개월까지인 점을 감안하면 우 대표는 사실상 기간을 꽉 채워 당국에 보고한 셈이다. 당국은 이후 올 4월 우 대표 측에 9월부터 세무 조사에 들어가겠다고 통보했다.
서울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당국은 최근 팔리지 않는 비상장 주식 물납 물량이 늘어나자 매각 기관인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와 함께 이달 18일 경기 이천에 위치한 삼라 사무실 현장도 조사했다. 17일 서울경제 취재진이 방문한 삼라 본사 사무실에는 10일부터 입사해 출근했다는 여직원 1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상속세 조사에는 통상 2~3개월이 소요된다.
당국이 특히 주시하는 지점은 우 대표가 세금을 신고하기 전 상속 재산을 크게 줄인 부분과 물납 예정 주식의 실제 지분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우 대표는 지난 3월 7일 상속받은 삼라 주식 가운데 절반 정도인 20만 6507주(6.13%), 동아건설산업 주식 전량을 각각 우선주로 전환했다. 이어 같은 달 11일 삼라·동아건설산업 우선주 전체, SM스틸 보통주 전체, 삼라 보통주 12만 6359주(3.75%)를 돌연 필의료재단에 출연했다. 이로써 우 대표에게는 삼라 보통주 2.43%만 상속 재산으로 남게 됐다.
현행 세법은 상속인이 세금 신고 기한인 6개월 내에 공익법인에 출연한 재산을 상속가액에서 제외한다. 또 재산이 SM그룹처럼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한 주식일 경우 의결권이 있는 주식 5%까지만 증여·상속세를 면제해 준다. 우 대표의 경우는 상속받은 삼라 보통주를 우선주로 전환해 의결권을 없앤 뒤 5%보다 적은 삼라와 SM스틸 보통주만 SM그룹 계열 재단에 출연해 세금 부담을 줄였다. 우선주 전환이 이뤄지면서 우 대표가 남긴 삼라 보통주 2.43%의 의결권 비중은 3.24%로 높아졌다. 우 대표가 상속세를 보유 주식으로 물납하게 되면 이 삼라 보통주 가운데 일부를 내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우 대표가 누나인 우건희 대표와 함께 2020년 1월 22일부터 필의료재단 이사진으로 있다가 공교롭게도 상속세 신고 직전인 올 2월 22일 나란히 사임했다는 점이다. 필의료재단은 서울 화곡동 강서필병원을 운영하는 곳으로 2019년 SM그룹으로 편입된 비영리 재단이다. 세법은 공익법인에 상속 재산을 출연한 사람이나 그의 특수관계인이 이사의 20% 이상을 차지하거나 임직원이 되는 경우 해당 법인에 가산세를 부과하도록 한다. 또 비상장 주식을 현금화해서라도 출연받은 재산이라면 3년 이내에 직접 공익목적 사업 등으로 소진해야 한다. 필의료재단은 상속세 신고 직전인 올 2월까지 5명의 이사진 중 2명을 우 대표와 그의 친누나로 채우고 있었다.
우 대표는 상속세 신고 즈음인 지난 3월 18일 대한해운(005880)에서 퇴사하면서 그룹 해운부문장(부사장)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당시 재계에서는 후계 수업을 받던 우 대표가 갑자기 그룹 경영에서 한 발을 빼자 갖가지 추측이 제기됐다. 세무 당국이 상속인인 우 대표와 그룹, 재단 간 실질적인 연결 관계를 집중적으로 살피는 이유다.
금감원에 따르면 필의료재단은 2022년부터 우 대표가 이끄는 SM하이플러스에서 5억 5000만 원을 빌리고 대출을 매년 연장하고도 있다. 현재 필의료재단은 내년 9월까지 돈을 빌리면서 SM하이플러스에 삼라가 보유한 동아건설산업 보통주 1만 1957주를 담보로 제공한 상태다.
SM그룹은 우 대표가 필의료재단에 지분을 넘긴 직후인 3월 21일 “총수 일가가 나눔 경영 실천을 위해 비영리재단 의료법인에 상속 재산 3200억 원을 기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서 비상장 주식 가액 책정 과정 등 구체적인 사안은 공개하지 않았다. 우 회장은 당시 “‘경제적 부(富)는 잠시 사회가 맡겨 놓은 것’이라는 신념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재계와 관가에서는 우 대표의 상속·증여 과정에서 표면적인 위법 사실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워낙 복잡한 절차를 거친 탓에 세무 당국이 각종 의문 지점은 면밀히 살펴볼 것으로 관측했다. 국세청은 상속세 신청 기한부터 9개월 뒤인 올 연말까지 우 대표에게 상속세 비상장 주식 물납 신청 허가 여부를 통지해야 한다.
당국 관계자는 “확실한 불법 행위가 없더라도 전형적인 세금 회피 수법에 해당한다면 이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며 “사안에 따라 상속인과 재단과의 관계 등이 중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SM그룹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이 사안에 대해서는 확인이 어렵다”고만 말했다.
앞서 광주지방검찰청 반부패·강력수사부는 이와 별도의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지난 25일 SM그룹의 서울 신촌 민자역사 사무실들과 우방의 대구 본사, 그룹 임원 자택, 광주 광산구청, 대구지방국세청 등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SM그룹 계열사와 관련된 이들이 광주 지역 건설 사업과 기업 세무조사 무마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지방국세청 직원에게 각각 금품을 전달했다는 혐의와 관련된 수사다. SM그룹은 현재 우 회장의 임직원 대상 욕설 논란, 강남 사옥 용도 변경 수혜 논란, UBC울산방송 소유와 관련 방송법 위반·부동산 투자 논란, 우 회장의 회삿돈 사적 유용 논란 등 각종 구설에 휩싸인 상태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우 회장이 UBC울산방송 소유 문제와 관련해 국정감사 출석에 불응하자 그를 고발하기로 의결하기도 했다.
SM그룹은 우 회장이 지난 1988년 광주에서 창업한 삼라건설을 모태로 삼는 기업이다. 적극적인 인수합병(M&A) 방식으로 사세를 확장해 현재 제조·해운·미디어 등 80여 개의 계열사를 보유한 재계 30위권 대기업집단으로 성장했다. SM그룹은 지난 정부 때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동생인 문재익 씨가 계열사인 케이엘씨SM(KLCSM)의 선장으로,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의 동생 이계연 씨가 삼환기업 대표로 동시에 재직해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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