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원 입법 형태로 14년째 국회에서 표류 중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을 본격화하고 나섰다. 의료계와 야당의 반발 가능성에도 보건·의료 부문을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기로 해 이들 분야의 산업적 접근을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는 의료 민영화와는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현재 진행 중인 의료 개혁과 여야 사이의 갈등 상황을 고려하면 쉽게 속도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31일 국회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위원장인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서발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주무부처인 기재부와의 협의를 거친 것으로 기재부는 송 의원의 법안을 정부안으로 삼을 계획이다. 서발법은 규제 개선과 인력·기술 양성 등을 통해 서비스 산업 발전을 지원하기 위한 법안으로 2011년 12월 18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됐으나 별다른 소득 없이 번번이 폐기된 바 있다.
송 의원 발의안의 경우 △서비스 신산업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정보통신·인공지능(AI)·블록체인·데이터 기술 등 시책 수립 △옴부즈만 및 갈등 조정 기구 설치 △자금·인력 지원과 조세 감면 등이 뼈대다. 발의안은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고 서비스 수출도 정체되고 있는 바 최근 4차 산업혁명 신기술 발전에 대응해 서비스 산업의 융복합 촉진 등을 통해 경쟁력 강화와 생산성 향상을 이뤄지게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국내 서비스 산업은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처지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1년까지 22년간 한국의 누적 서비스 수지는 2529억 달러(약 348조 2700억 원) 적자로 대규모 흑자를 내고 있는 미국(3조 7785억 달러)이나 영국(2조 5585억 달러)과 크게 비교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8년 기준 한국의 서비스업 연구개발(R&D) 투자 규모가 전체 R&D 투자액의 8.9% 수준인 70억 달러로 미국(1612억 달러, 36.2%), 일본(164억 달러, 12%) 등에 비해 투자 규모나 비중 모두 작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서발법을 제정을 통해 연도별 발전 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콘텐츠·관광 등 유망 서비스 산업을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 기존 업계와 신규 서비스 업계가 충돌하는 타다·로톡 사태 등을 막기 위해 기재부 산하에 서비스산업발전위원회를 설치하고 갈등 조정 기구를 운영하는 내용도 담겼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이번 서발법은 기본법의 취지를 충실히 담았다”며 “법이 조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이번 발의안과 관련해 보건·의료를 눈여겨보고 있다. 지금까지 야당과 시민단체, 의료계는 병의원·한의원 등 보건·의료 분야 서비스를 산업의 시각으로 바라볼 경우 의료 공공성이 훼손될 수 있다며 보건·의료 서비스를 서발법 적용 예외 산업으로 두거나 법 자체를 철회하라고 요구해왔다. 10년이 넘는 기간 서발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것도 보건·의료 서비스를 서발법 적용 대상에 포함할지를 두고 여야와 정부, 의료계가 강하게 대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송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의료법·약사법·국민건강보험법에서 규정한 사항에 대해서는 이 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는 식의 조문이 담기지 않았다. 앞서 21대 국회에서 윤석열 정부는 보건·의료 분야를 서발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며 한발 물러서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원칙을 고수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정부가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해진 법률의 틀 안에서 보건과 의료 산업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을 최대한 찾아보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기본법에서 특정 분야를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은 2011년 첫 추진 때부터 동일하게 유지된 입장”이라며 “서발법은 기본법이라 의료법과 국민건강보험법의 큰 틀을 벗어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회 상황이 녹록지 않다. 당장 국민의힘 공천 개입 의혹 확산으로 여야가 파열음을 내고 있는 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국회 상황이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의 해명에도 보건·의료 부문을 서발법 대상에서 명확히 제외하지 않는 데 대한 의료계와 야당의 반발도 거셀 것으로 보인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서비스 산업을 키우자고 한 것이 십수 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진척이 없다”며 “글로벌 무역과 경제 흐름이 대전환기를 맞고 있는 만큼 정치권이 서비스 산업을 키우기 위해 초당적인 자세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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