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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의대 열풍과 과학자본 축적

송종호 IT부 차장





의학 드라마로 큰 인기를 끌었던 ‘하얀거탑’의 김명민 배우와 ‘뉴하트’의 주인공인 김민정·지성 배우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1999년 방영된 드라마 ‘카이스트’에 같은 학번 동기로 출연했다. 카이스트 다니던 학생들이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된 셈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주인공에게 키스의 ‘원천 기술’을 알려주던 문제적 남아 납득이(조정석 분)도 의대를 졸업해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는 간담췌외과 부교수가 됐다. 이공계의 암울한 현실을 빗댄 네티즌들의 풍자지만 웃고 넘길 수도 없다.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지독하다.

이공계 최고 인재 교육을 목표로 하는 과학기술특성화대학 중 일부는 신입생을 100% 채우지 못한 처지다. 그마저도 2019년 이후 5년 동안 4대 과기원의 중도 탈락자가 1006명에 이른다. 의대 증원이라는 태풍에 올해는 그 숫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영재학교와 과학고에서도 같은 기간 303명이 자퇴했다. 과학고에서 의대 진학 시 제재가 강화되자 입시 학원으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그 사이 신기술 인력은 비상이 걸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인재 성장·발전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앞으로 3년 내 디지털·바이오헬스·반도체 등 신기술 분야에 30만 명 이상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위기감을 느낀 정부가 전폭적인 이공계 석박사 지원을 약속하고 100% 취업을 보장하는 계약학과 등을 늘리는 등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른 시일 내 이공계 기피 현상이 해소되긴 어려워 보인다.

이에 과기정통부가 아동·청소년기에 과학 관련 지식·경험 등을 많이 쌓도록 해 과학 친화적 풍토를 조성하기로 한 것은 옳은 방향이다. 긴 호흡으로 과학자의 처우와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는 노력도 병행하기로 했다. 이미 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은 과학기술 인재 육성을 위해 과학 대중화를 토대로 ‘과학 자본’ 축적을 꾀하고 있다. 과학 자본은 쉽게 말해 자연사박물관에 견학을 다녀오고, 어린이 과학 잡지를 많이 접할 수록 이공계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내친김에 이번 주말 아이와 집 근처 자연사박물관 견학을 신청했다. 그런데 주말에 학원 보충 강의가 잡혔다. 예정대로 자연사박물관을 갈 수 있을지 고민이다. 정부의 노력으로만 이공계 기피 현상을 극복하기 벅찬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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