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이수형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이 금리 인하 실기론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이들이 김연아 선수에게 왜 은메달 땄느냐고 지적하는 꼴”이라며 “자영업자와 민간 소비가 어려운데 왜 금리를 내리지 않느냐고 하는데 우리 임무는 원래 물가 목표와 금융 안정”이라고 잘라 말했다.
정부와 학계에서는 이를 두고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달리 한은법에는 물가와 금융 안정만 목표로 제시돼 있지만 이 두 가지만 보겠다는 것은 단기적인 국민들의 어려움은 외면하겠다는 의미라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3일 “통화정책은 장기적·구조적 측면을 봐야 하지만 너무 한쪽에 매몰되면 특정 분야의 일시적인 고통을 쉽게 무시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미국 대통령 선거와 우크라이나 확전 같은 글로벌 경제·복합위기로 경기 하방 위험이 커진 가운데 금통위가 금융뿐만 아니라 산업과 저소득층의 의견까지 고루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금통위 구성이 금융 출신 인사에 쏠려 있어 다양성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서울경제신문이 2004년 한국증권업협회장의 금통위원 추천권이 폐지된 후 임명된 위원(당연직 제외) 31명의 출신을 따져보니 재계는 정순원 전 위원 1명(약 3.2%)에 그쳤다. 정 전 위원은 현대차 사장과 삼천리 고문을 거쳐 금통위에 입성했다. 비율로 보면 경제 전공 교수가 최근 20년 동안 12명(약 38.7%)으로 가장 많았고 관료를 지낸 이들이 8명(약 25.8%)으로 뒤를 이었다. 관 출신의 경우 금융이나 국제금융을 전공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현 금통위 구성도 비슷하다. 전국은행연합회가 추천한 신성환 위원은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를 지냈고 한은 몫인 장용성 위원은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출신이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가 추천한 황건일 위원과 이 위원은 행정고시 출신으로 기재부에서 일했다. 김종화 위원은 한은 부총재보 출신으로 금융결제원장 이력이 있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는 산업계 네트워크를 이용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사태 파악과 진정에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면서 “금통위원들 가운데 물가나 가계부채 등 금융을 잘 다루는 인사는 많지만 실물경제 문제를 해결할 만한 전문가는 적다”고 강조했다.
금통위 내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나온 바 있다. 올 4월 임기를 마친 서영경 전 금통위원은 “금통위원을 하며 실물경제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꼈다”면서 “여성 위원뿐만 아니라 산업계에서 몸담았던 위원이 있는 것이 좋다고 본다”고 작심 발언을 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무역과 경제가 변곡점에 서 있는 만큼 앞으로는 금통위에도 산업과 무역·통상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들어올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내수와 기업 경기는 직결되는 관계이기 때문에 기업 섹터에서 온 전문가들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금통위의 다양성은 집단적 사고의 오류를 피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분석이 많다. 한은만 해도 최근 집중도가 완화하고 있지만 서울대 같은 특정 대학 출신이 많다. 금통위도 특정 대학 동문들이 많아 이를 보다 다양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3분기 국내총생산(GDP)만 해도 전 분기 대비 0.1% 성장하면서 역성장을 겨우 면했는데 한은 내부에서는 이 정도로 성장률이 낮을지는 예측하지 못했다. 김 교수는 “연준 이사는 한국처럼 같은 대학 출신으로만 뽑지 않는다”며 “집단 사고를 피하기 위함인데 직접 돈을 굴려본 기업가들이 실제로 경기 진단을 더 엄중하게 할 때가 많다”고 조언했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 역시 “한은의 독립성이 중요하지만 금리 결정을 우리만 할 수 있다는 식의 태도는 맞지 않는다”며 “금통위의 결정이 전 국민에게 영향을 준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처럼 금융 쪽에 쏠려 있는 구성을 바꿔 재계 등으로 실질적인 문호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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