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ESG(기업·사회·지배구조) 열풍이 불자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그린워싱은 기업이 실제로 친환경 측면의 이점이 없는 제품·서비스 등을 친환경인 것처럼 선전해 이익을 얻는 행위다. 지난해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블록체인 시범사업에 선정된 리사이클렛저는 블록체인의 장점을 살려 그린워싱을 해결한다는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자원의 공급망을 블록체인으로 투명하게 추적·관리해 점점 커질 것으로 전망되는 순환자원 시장의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4일 서울 송파구 KISA 핀테크기술지원센터에서 만난 김기종 리사이클렛저 대표는 정보기술(IT) 업계 경력 24년 차다. 개발자로서 지난 2016년 블록체인 기술을 처음 접한 김 대표는 바이오 연료 시장의 그린워싱을 해결하기 위해 2년 뒤 리사이클렛저를 창업했다.
김 대표는 바이오 연료의 원료인 폐식용유에 주목했다. 그는 “가격이 저렴한 팜유를 폐식용유로 속여 막대한 이익을 얻는 사례가 있다”며 “팜유를 생산하는 야자나무는 열대우림을 파괴해 탄소를 많이 배출하기 때문에 환경 보호와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은 바이오 연료 공급망을 추적하도록 인증 제도를 의무화했다. 인증을 받지 못하면 미국과 유럽에 바이오 연료를 수출할 수 없다. 식당 등에서 폐식용유를 수거하고 옮기는 과정에서 팜유로 몰래 둔갑시키는 행위를 막는다는 취지다.
리사이클렛저는 이처럼 바이오 연료를 수출하려는 기업들의 인증 취득을 지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치킨집에서 배출된 폐식용유의 이동 경로를 모두 추적해 블록체인에서 투명하게 관리하는 방식이다. 데이터를 한 번 등록하면 수정할 수 없고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는 블록체인의 강점을 활용했다. 지난해 말엔 한국 바이오연료 기업 DS단석이 리사이클렛저의 인증 시스템으로 미국 수출 인증을 획득한 바 있다. 김 대표는 “특히 아시아는 거대한 폐식용유 공급처”라며 “말레이시아 등 여러 아시아 국가와도 계약을 맺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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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폐식용유나 폐기물에서 뽑아내는 ‘지속가능 항공유(SAF)’에도 관심을 높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SAF 사용을 의무화하는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폐식용유 공급망 추적에 대한 수요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는 배경이다. 지난해 유럽연합(EU)은 내년부터 전체 항공유 중에서 SAF를 2% 이상 의무 혼입하고 2050년까지 SAF 사용 비율을 70%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미국도 지난 2022년 ‘SAF 그랜드 챌린지’를 통해 2050년까지 국내·국제선 항공기 연료 수요의 100%를 SAF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국가별로 폐식용유 수거 용기와 방법이 다르다는 불편함도 해결했다. 김 대표는 개발자 경험을 살려 용기 위에 올리면 자동으로 폐식용유의 용량을 측정하는 기기를 직접 개발했다. 기기가 측정한 데이터를 블록체인과 연동된 자체 애플리케이션(앱)에 기록한 뒤 클릭 한 번으로 해당 폐식용유의 유통 기록을 확인하도록 했다. 김 대표는 “폐식용유가 어느 식당에서 수거됐고 어디로 팔렸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폐식용유 유통 이력을 종이 영수증으로 관리하던 점도 개선했다. 김 대표는 “수기로 (공급 경로를) 조작할 가능성을 차단하고 블록체인으로 신뢰성을 높였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기업이 공급망 데이터를 제공하면 탄소배출권을 얻는 보상 체계도 구상 중이다. 그는 “리사이클렛저의 궁극적인 목표는 ‘정확한 추적’과 ‘공정한 보상’”이라며 “먼저 나서는 이에게 보상이 있어야 재활용도 계속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보다 많은 공급망 데이터 확보를 위해 사업을 자발적 탄소배출권 시장으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자발적 탄소배출권 시장은 기업이 탄소 배출을 상쇄하기 위해 탄소 크레딧을 구매·거래하는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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