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가계부채 관리 방안의 하나로 부동산투자회사(REITs·리츠)가 아파트를 보유·임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리츠 투자금 1억 원에 월세 250만 원이면 거액의 가계대출을 받지 않고 서울의 10억 원짜리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향후 집값 상승 시 투자 수익까지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월세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은 걸림돌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와 나현주 한은 금융안정연구팀 과장은 5일 한은·한국금융학회 공동 정책 심포지엄에서 이 같은 내용을 뼈대로 하는 ‘한국형 뉴리츠’ 방안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서울 10억 원(중위 가격)짜리 아파트를 기준으로 리츠 주식 매입 가격과 월 임차료를 각 1억 원과 250만 원으로 설정했다. 지분을 매입한 가계는 리츠사가 보유한 주택에 거주할 권리를 갖게 되고 연 배당 수익(최대 177만 원)을 통해 실제 임차료를 일부 아낄 수 있다. 최초 투자금이 1억 원인 만큼 최소 수억 원대의 가계대출이 필요하지 않다.
연구팀은 리츠 활용 시 가계가 주택담보대출 채무자에서 리츠 투자자로 전환되고 자연스럽게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할 수 있다는 데 주목했다. 리츠사는 공공 및 민간 자금 등 다수의 투자자를 통해 재원을 조달하기 때문에 주택 가격의 급락에 따른 위험도 분산할 수 있다. 김 교수는 “3분위의 순자산이 3억 5000만 원가량인데 10억 원 아파트를 사려면 6억 원 이상의 무리한 대출을 일으켜야 해 전월세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리츠는 기존 보증금 개념을 주식 매입 비용으로 대체해 향후 배당 수익으로 자산 축적까지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서울에 월세로 200만 원 이상 내는 가구가 1만 6000세대로 이런 수요를 리츠로 끌어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용산 국제업무지구와 상암DMC 등 입지가 좋은 곳을 한국형 신리츠 적용 지역으로 활용하면 택지 매입 부담을 줄이고 사업도 활성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부의 8·8 대책에서 제시한 그린벨트 해제 지역을 한국형 리츠로 개발하는 방안을 서울시와 국토교통부가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높은 월세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는 “가계소득에 따라 바우처를 지급해 주변 시세보다 약간 낮은 수준의 임차료를 낼 수 있게 하는 방안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리츠를 활용해 주거에 필요한 자금의 상당 부분을 대출이 아닌 민간 자본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가계부채 누증을 완화하는 데 큰 보탬이 될 것”이라며 “가계가 무리한 대출로 주택을 구입하기보다 적절한 비용으로 주거 서비스를 이용하는 대안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금리 인하가 민간 신용을 확대해 장기적으로 구조적인 문제를 심화할 수 있다는 점을 (통화정책 결정 때) 같이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는 수요와 공급(은행의 수익 중시), 제도 정책(전세대출 보증)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건전성 관리는 일률적 규제보다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차주별 상환 능력을 고려하는 기준을 통해 관리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동산 투자 수요를 억제함과 동시에 담보 자산 처분을 통한 부실채권 정리와 가계 채무 재조정, 서울 지역 부동산 수요 분산과 공급 확대 등 주거 및 부동산 시장 정책 등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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